기후변화로 올림픽 존폐 ‘흔들’
지난달 27일 프랑스 파리 그랑 팔레에서 2024 파리 올림픽 펜싱 경기가 펼쳐지고 있다. [연합] |
[헤럴드경제=안효정 기자·정호원 수습기자] 기후위기 시대를 맞아 지구촌 축제인 올림픽 풍경도 변화하고 있다. 2024 파리 올림픽은 ‘지속 가능성’을 핵심 원칙으로 내세웠다. 지속 가능성을 실현하기 위해 파리 올림픽 조직위원회는 경기장 재활용부터 냉매제 감축, 저탄소 목표 달성까지 공을 들이고 있다. 기후위기가 바꿔놓은 올림픽 풍경을 자세히 짚어봤다.
▶경기장 재활용률 95%…올림픽 끝나도 ‘지속가능하게’ = 이번 파리 올림픽은 ‘불필요한 변화’를 최소화했다. 경기장의 95%는 신축이 아닌 기존 건축물을 활용했다. 그간 많은 올림픽 개최국이 올림픽을 대규모 도시 개조의 기회로 삼아온 것과 대조적이다. 조직위는 신축에 필요한 콘크리트, 강철 등을 제조하는 과정에서 많은 온실가스가 발생하기 때문에 이 같은 변화를 추구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과거 대회에서는 올림픽을 위해 새롭게 지어진 경기장이 대회 종료 후 활용 방안을 찾지 못해 애물단지로 전락하거나 관리 비용으로만 수십억을 쓰곤 했다. 조직위는 이를 반면교사 삼아 개발로 인한 환경 파괴를 최소화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그 대신 그랑팔레, 콩코르드 광장 등 파리의 유서 깊은 명소를 경기장으로 탈바꿈했다. 센강에서 개회식이, 베르사유 궁전에서 근대5종 경기가 열린다. 수영은 1924년 파리 올림픽 때 지은 경기장을 다시 활용했다. 축구 종목은 건립한 지 90년 된 마르세유 경기장에서 진행됐다.
2024 파리 올림픽 수영 경기가 열린 아쿠아틱 센터. 천장은 친환경 목재로 만들어졌다. [게티이미지닷컴] |
얼마 안 되는 신축 경기장도 친환경적으로 구축됐다. 신축 경기장에는 목재를 50% 이상 사용했고, 옥상에는 태양광 패널을 설치했다.
선수촌 건축물도 대부분 목재로 지어졌다. 수영이 열리는 아쿠아틱 센터에 들어가는 의자 1만여개는 플라스틱 폐기물로 제작됐다. 대회 운영에 필요한 모든 전력은 풍력, 태양광 등 100% 재생에너지로 충당됐다.
지속 가능성을 실현하고자 조직위는 올림픽이 끝난 이후의 계획도 마련했다. 128에이커(51만7000㎡) 규모의 선수촌 단지는 추후 6000명의 주민이 사는 혼합 지역으로 사용될 예정이다. 또 경기에 활용된 운동기구 200만대 중 75%는 임차 방식으로 재사용될 전망이다.
파리 생드니에 위치한 2024 파리 올림픽 선수촌 내 한국 대표팀 숙소 내부 사진. 지난 2020 도쿄 올림픽에서도 사용됐던 골판지 침대가 재등장했다. 친환경 올림픽을 위해 조직위는 에어컨 대신 선풍기를 제공했는데, 선수들이 더위에 지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자 대한체육회는 별도로 냉풍기를 공수해 각 방에 비치했다. [연합] |
▶‘온난화 유발’ 냉매제 줄여야…‘NO 에어컨’ 올림픽 = 대회 전부터 조직위가 ‘에어컨 없는 올림픽’을 치르겠다고 해 이슈가 됐다. 그 배경에는 에어컨 냉매로 사용되는 HFC(수소불화탄소)를 줄이고 에어컨 배출량을 감축하기로 결의한 국제 사회의 노력이 있다. HFC는 지구온난화 주범으로 꼽히는 이산화탄소보다 최대 1만배 이상 높은 지구온난화지수(GWP)를 보인다. 유럽연합(EU)도 2050년까지 HFC를 완전히 퇴출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하지만 조직위 방침은 적지 않은 대표팀 선수단의 반발에 부딪혀 앞으로 진행 방향에 대한 숙제가 남았다. 프랑스 일간지 르몽드에 따르면 호주 올림픽 위원회는 “에어컨을 쓰지 않겠다는 (파리 올림픽의) 취지는 존중한다”면서도 “우리는 소풍을 가는 게 아니다”라고 했다.
폭염을 대비해 미국과 캐나다, 호주 등은 자체적으로 에어컨을 마련해 숙소에 들여놓았으며, 한국도 냉풍기를 각 방에 배치하고 이동식 에어컨 26대를 준비했다. 일부 선수단은 에어컨 없는 선수촌을 나와 새로운 숙소와 이동버스를 이용했다. 조직위도 결국 에어컨 2500대를 추가로 준비했다.
2024 파리올림픽이 진행되고 있는 프랑스 파리의 30일 최고기온이 35도에 달해 선수들이 힘들어하고 있다. [AP] |
▶기후위기가 쏘아올린 공…탄소배출량 50% 감축 목표 = 조직위는 지속 가능성을 위해 탄소배출 목표치를 기존 올림픽 대비 50%로 줄어든 190만톤으로 설정했다. 2012년 런던 대회(340만톤)와 2016년 리우(360만톤) 대회 때 탄소배출보다 절반 이상을 감축하겠다는 것이다.
조직위는 “이번 올림픽이 탄소배출 감축의 표준 정립과 지속적인 정책 추진의 동력이 되길 기대한다”고 했다. 그러나 조직위는 개막식이 다가오자 목표 배출량을 211만톤으로 재조정했다.
파리 올림픽이 변화를 꾀한 데는 기후변화로 올림픽 존폐위기를 느끼기 때문이다. 여름철 폭염이 빈번해지면서 7~8월에 열리는 하계 올림픽 시기를 바꿔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동계 올림픽도 지구온난화로 겨울 스포츠를 개최할 수 있는 도시가 사라지는 위기에 봉착하자 개최지 선정부터 어려움을 겪고 있다.
2022년 캐나다 워털루 대학이 발표한 ‘기후변화와 동계 올림픽의 미래’ 보고서는 “전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이 현재 수준을 유지할 경우 과거 동계 올림픽을 개최한 21개 도시 중 유일하게 ‘삿포로’만 대회를 진행할 수 있다”고 했다. 지난 베이징 동계 올림픽에서는 100% 인공눈을 활용했다.
이번 파리 올림픽의 새로운 시도는 긍정적이지만, 단순히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는 것 이상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프랑스 비영리 기후 분석단체 에클라시(éclaircies)의 공동 창립자 세사르 두가스트는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올림픽과 같은) 거대한 이벤트를 근본적으로 재고해야 한다”며 “모든 이벤트를 단일 도시에 집중시키는 대신 전세계에 분산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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