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주보기①] 손유동 “‘알앤제이’, 감정+체력 하얗게 불태워요” 
[마주보기①] 손유동 “‘알앤제이’, 감정+체력 하얗게 불태워요” 
  • 김진선 기자
  • 승인 2019.09.05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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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반목하는 집안에서 태어난 두 남녀가 첫눈에 반해 불꽃같은 사랑에 빠져들고, 사랑을 지키기 위해 죽음까지 불사한다. 이들의 운명은 금지된 사랑, 폭력과 욕망, 피와 눈물, 죽음의 서사로 펼쳐진다.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은 이 같은 스토리로, 많은 이의 심금을 울렸고, 영화, 연극, 뮤지컬 등 다양한 장르에서 변주됐다. 

연극 ‘알앤제이(R&J)’(이하 ‘알앤제이’)는 엄격한 가톨릭학교에서 학생들이 금서인 ‘로미오와 줄리엣’을 탐독하며 위험한 일탈의 게임에 빠져는 내용이다. ‘로미오와 줄리엣’을 변주했지만, 교육과 생활 등의 제한을 받는 가톨릭 학생들의 시선으로 바라본 ‘로미오와 줄리엣’이기 때문에 다른 장르로 다뤄진 ‘로미오와 줄리엣’의 결과 사뭇 다르다. 학생 1, 2, 3, 4는 ‘로미오와 줄리엣’의 등장인물로 무대에 올라, 활자에 생명을 불어넣는다. 그 생명엔 학생들의 경험과 사고방식 등이 더해져, 감정이 실리게 되고, 이는 곧 ‘깨달음’과 ‘성장’이 된다. 

배우 손유동은 초연에 이어, 다시 ‘알앤제이’에 올랐다. 학생3으로 등장한 그는, 로미오의 친구이자 영주의 친척 머큐쇼. 줄리엣의 엄마 캐풀렛 부인, 로렌스 수사를 분한다. 

“초연의 힘들었던 기억이 미화될 즈음에 제작사에서 다시 연락이 왔어요. ‘그때 정말 재밌고, 좋았지’라는 기억으로 다시 무대에 오른 건데, 역시 쉽지 않네요. 달라진 점이요? 그때나 지금이나 마음은 똑같지만, 재연에 오르면서 좀 더 분석적으로 바라보게 됐어요. 초연 때는 작품을 같이 만든 느낌이라, 감각적으로 다가갔다면, 이번엔 좀 더 디테일해진 거죠.”

‘알앤제이’는 극중극 형식일 뿐 아니라, 학생3으로 바라본 ‘로미오와 줄리엣’에 대한 감정까지 담아 연기해야 돼 어렵다. 관객들 역시 ‘학생의 감정’인지, ‘학생이 연기하는 인물의 감정’인지 헷갈리게 되니 말이다. 학생3으로 바라본 머큐쇼, 캐풀렛 부인, 로렌스 수사는 어떤 인물일까. 

“인물의 본질적인 모습보다, 표면적인 것에 집중했어요. ‘여성이라면 이럴 거야’라는 상상을 손유동이 아니라, 학생3의 시선을 생각한 거죠.”

손유동이 바라본 학생3은 어떤 인물일까. ‘엄격한 규율 내에 억압을 받는 가톨릭 학교 학생들’이라는 큰 설정 안에서 학생 1, 2, 3, 4는 각자의 이야기를 그린다. 

“학생3은 억압된 학교생활로 인해 많은 것을 느끼지 못한 채 살고 있을 거예요. 글로만 접했던 작품 ‘로미오와 줄리엣’을 읽으면서, 자신이 경험하지 못한 것을 보고 느끼고, 흥미를 갖게 되고, 또 두려움을 느끼기도 해요.” 

학생3은 트라우마를 지닌 인물이다. 극 초반, 그는 체벌을 당한다. 교복 바지를 벗고, 두려움을 느낀다. 그런 그가 줄리엣의 엄마가 돼, 자신이 당했던 아픔, 고통과 마주하게 된다. 다른 학생들은 ‘로미오와 줄리엣’ 안에서 폭력에 대해 과잉으로 받아들이는 학생3의 손을 잡고 서로를 위로하기도 한다. 

“줄리엣이 폭력을 겪는 모습이 학생3의 가장 큰 라인 중 하나일 거예요. 친구들이 줄리엣의 아버지를 표현할 때, 자신이 보고 배운 대로 행하는데, 학생3은 자신의 트라우마를 마주하고, 폭력성이 더 심해지고 말아요. 그런 자신의 모습에 놀라고요.” 

학생들이 ‘로미오와 줄리엣’을 바라보는 시각이 바뀌고, 생각이 진진해지는 부분은 바로 결혼식 장면이다. 장난스럽게 목소리를 내고, 호기심으로 작품에 다가가던 자신의 목소리로 힘을 더하기 시작한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결혼식 장면 이후로, 학생 1, 2, 3, 4는 자신이 표현하는 ‘로미오와 줄리엣’이 잘못된 게 아니라는 것을 본질적으로 이해하고 느끼게 돼요. 작품을 본질적으로 설명하고, 또 서로를 설득하고 이해하게 되는 거죠.”

특히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읊는 만큼, 주옥같은 대사들도 많다. 있는 그대로를 표현한 게 아니라, 쏟아지는 감정을 담은 듯 아름답다. 손유동은 자신의 대사 외에도 다른 인물들의 대사까지 줄줄 읊으며 작품 속 아름다움을 곱씹기도 했다. 

“모든 감정과 표현이 매혹될 정도로 아름다운 대사로 탄생됐어요. ‘여기 이 과일나무 가지 끝을 은빛으로 물들이는 저 신성한 달에게 맹세할 게요’...얼마나 아름다운가요. 한 장면을 꼽기 어려울 정도로 주옥같은 글귀가 많아요. 하다 보니 다른 배우들의 대사까지 거의 다 외우게 됐어요.”

아름다운 대사로 가득하지만, 마주할 때마다 다르게 느껴지고, 다시 읽히는 부분도 적잖다. 바라보는 이의 상황이나 기분에 따라도 다르게 바라볼 수 있는 매력이 있는 작품이라는 것.  그만큼 쉽지 않은 작품이지만, 다시 보면 더 깊은 감칠맛을 느낄 수 있다는 설명이다.
 
“무대에 오르는 저희도 어려워요. 문득문득 ‘어?’하고 느끼는 부분도 있고요. 제 대사 뿐 아니라, 다른 인물의 대사에서도, 갑자기 웃기기도 하고, 또 이렇게 슬펐나? 싶기도 하죠.” 

초연에 이어 재연에서도 학생3을 맡았다. 손유동이 다시 작품에 오른다면 맡고 싶은 다른 인물도 있을까. 그가 바라본 학생3이라는 인물도 궁금했다. 

“전 제가 맡은 역할이 제일 소중해요. 다른 역할을 맡고 싶었던 적이 단 한 번도 없어요. 다시 ‘알앤제이’를 하게 되더라도, 또 학생3으로 오르고 싶어요. 인물 자체로도 매력적이지만, 그 친구와 함께 보낸 시간도 좋고, 고생한 기억도 좋더라고요. 학생3이요? 억눌린 만큼, 희곡 속에서 튀어 오르는 힘 있는 친구죠.” 

배우 손유동으로서 학생3에게 건네고 싶은 말도 명확했다. 로미오 역을 맡은 학생1은 확실한 결심을 통해 무대를 뛰쳐나가지만, 다른 인물들의 성장은 작품 속 대사와 행동을 통해서만 드러나기 때문에 그들의 앞으로가 궁금해진다. ‘알앤제이’의 여운이 느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로미오와 줄리엣’이라는 작품을 임하고, 느꼈던 경험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잊지마’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학생1처럼 대단한 결심을 해서 뛰쳐나간 것이 아니겠지만, 그래도 학생3이 예전으로 돌아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아마 그의 삶에 변화가 있지 않을까요.” 

막이 오른 뒤로 인터미션 외에는 무대를 비우지 않는 ‘알앤제이’는 분명 쉽지 않은 무대다. 하지만 손유동은 작품 안에 모든 것을 쏟아내고, 그만큼의 희열을 느끼고 있었다. 후회 없이 무대를 가득 채우는 그의 열정이 드러났다. 

“무대에 오르기 전과 중간 중간, 500ml 물을 한 세 통 정도 마시는데, 땀을 그만큼 흘리는 거 같아요. 작품 안에 모든 것을 쏟아냈기에, 속이 후련해요. 희열이 느껴져요. 감정, 체력 모두 하얗게 불태워요.”

김진선 기자 wlrntkfkd@viewer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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