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석에서] 영혼의 울림에 귀 기울여봐...뮤지컬 ‘시라노’
[객석에서] 영혼의 울림에 귀 기울여봐...뮤지컬 ‘시라노’
  • 김진선 기자
  • 승인 2019.08.22 17: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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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펜 끝이 종이와 입을 맞추는 순간, 단어가 태어나고 그 단어는 모여서 시가 되고, 그 시는 나에게 영혼의 노래를 불러줍니다.”

그의 혀끝에서 흘러나오는 단어와 문장은 감정을 담은 듯 살아있다. 그가 내뱉는 구절 속에는 운율과 라임으로 생기가 더해진다. 거기에 100대 1로 싸워도 이길 수 있는 뛰어난 검술 실력자다. 하지만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에게 마음을 표현하지 못한다. 유독 큰 자신의 코 때문이다. 유일한 콤플렉스인 코 때문에, 벙어리 냉가슴을 앓는, 코가 커서 슬픈 시라노의 얘기다.

시라노는 자신이 사랑하는 록산의 행복을 간절히 바란다. 록산이 첫눈에 반한 크리스티앙의 목소리까지 기꺼이 돼 주는, 진정으로 사랑할 줄 아는 남자다. 그의 이야기를 담은 뮤지컬 ‘시라노’는 프랑스 극작가 에드몽로스탕의 희곡 ‘시라노 드 벨쥐락’을 원작으로 한다. 큰 코를 가진 남자 시라노가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 자신보다 잘생긴 크리스티앙의 편지를 대필해 둘을 이어주려 하는 이야기다.

시라노가 있는 가스콘 부대에 크리스티앙이 입대한 것을 안 록산은, 시라노에게 크리스티앙을 부탁한다. 시라노는 시린 마음을 부둥켜안고, 록산을 위해 묵묵히 크리스티앙을 지켜봐준다. 또, 크리스티앙 대신 목소리를 내어주고, 편지로 마음을 전해준다. 시라노의 마음이 담긴 편지를 받은 록산은, “영혼까지 사랑한다”라고 말해 시라노와 크리스티앙의 마음을 혼란스럽게 만든다. ‘시라노’에는 콤플렉스가 있지만 사랑 앞에서 작아진 시라노의 진심, 표현을 잘 못하지만 진정성 있는 크리스티앙의 진심이 모두 담긴 것이다.

1막은 시라노와 크리스티앙이 록산에게 마음을 전하는 장면이 좌충우돌 담겨 웃음을 자아낸다. 크리스티앙이 록산의 집 앞에서 고백하는 장면이 특히 그렇다. 시라노의 말로, 록산에게 마음을 전하는 크리스티앙은 “어둠에 그대 가리워져 보이지 않아도”를 “어둠의 그 대가리 어서 보여줘”라고 잘 못 말한다. “내 영혼이 가리가리 찢겨도”를 “내 영혼의 아가리 찢겨소”라고, “그댈 향한 내 마음은 철 없는 연인과 같다”를 “털 없는 여인과 같다”라고 말해 관객들의 배꼽을 잡는다.

2막은 전쟁 장면으로 펼쳐져 1막에 비해 무겁고 슬프다. 하지만 록산을 향한 시라노의 사랑이 아름답게 담겼다. 이는 배우들의 안정감 있는 연기를 통해 더 깊고 진하게 다가왔다.

류정한은 재치 넘치는 시라노의 능청스러운 모습부터, 사랑 앞에 작아진 인간적인 시라노의 모습을 생생하게 표현했다. 비장하고, 아름다운 곡들을 물론이고, 록산과 크리스티앙의 결혼을 위해 드기슈를 붙잡기 위해 부르는 ‘달에서 떨어진 나(I fell from moon)’을 통해 웃음까지 전한다. 15년 세월을 무색하게 만드는 나하나의 폭넓은 표현력, 잘생기기만 한 게 아니라, 순진하고 어수룩한 연기도 잘 해낸 송원근의 등장은 ‘시라노’의 감정 이입을 높였다.

시라노가 뛰어난 검객이자, 아름다운 시를 쓰는 언어의 마술사인만큼, 말재미도 극을 즐기는 요소다. “잔인한 영광이로다. 내 말을 품은 입술에 나의 그녀가 입을 맞출 때” “종이와 펜이 입을 맞추면 시가 탄생하죠” “마카롱 같은 달이 떴어요” “나의 편지는 입술이요, 이 단어들은 똑똑 떨어지는 꿀이니 그대가 호로로록 마셔 주시오. 호로로록!” “그대에게 내 영혼의 진심을 고백하리다!” “내 말들이 어둠에 적응했나 봐요” 등의 대사는 극의 감성을 더했다.

특히 ‘시라노’는 초연에 비해 장면을 더하고, 넘버를 추가해 극의 개연성을 높였다, 크리사티앙과 록산의 만남에 ‘소매치기를 당할 뻔한’ 설정을 더했고, 전쟁터에 등장한 록산에게도 스토리를 더해 극을 훨씬 부드럽게 이었다. 덕분에 인물들에 대한 이해가 높아졌다고, 감정 에도 몰입이 높아졌다.

‘시라노’는 완벽하지 않은 이들의 가슴 아픈 사랑이야기다. 모든 것이 완벽하지만, 코가 콤플렉스인 시라노, 잘생긴 외모를 지녔지만 말솜씨는 꽝이며, 인문학적 지식이 부족한 크리스티앙, 운명의 상대를 알아보지 못하고, 서툰 사랑에 빠진 록산처럼 말이다. 자신이 사랑하는 이의 행복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붓는 시라노의 모습은, 진정한 사랑이 어떤 감정인지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뛰어난 검객이자 시인인 시라노는 류정한, 최재웅, 이규형, 조형균이 분하며, 뛰어난 외모를 지녔지만 서툴 말솜씨로 마음을 표현하지 못하는 크리스티앙 역은 송원근, 김용한이 꾸민다. 시라노와 크리스티앙의 사랑을 받는 여인 록산은 나하나와 박지연이 맡는다. 10월 13일까지 서울 강남구 광림아트센터 BBCH홀에서 공연된다. 

김진선 기자 wlrntkfkd@viewer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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