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주보기] ‘사자’ 김주환 감독 “사람이 사람을 구하는 게 판타지인 세상, 문화가 해야할 일은…”
[마주보기] ‘사자’ 김주환 감독 “사람이 사람을 구하는 게 판타지인 세상, 문화가 해야할 일은…”
  • 홍종선 대중문화 전문기자
  • 승인 2019.08.06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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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 ‘청년경찰’의 감독 김주환과 배우 박서준이 다시 뭉쳤다. 같은 감독의 작품일까 싶을 만큼 장르도 미장센도 전혀 다르고, 박서준 얼굴에서 새로운 매력도 발굴됐다. 심성 맑은 사람이 어려움에 처한 다른 이를 구하는 고갱이는 같았다.

악귀를 쫓는 구마행위를 히어로 액션물로 풀어낸 신선한 시도는 ‘이 정도면 관객이 좋아하겠지’라는 흥행공식을 답습하지 않아 반가웠다. 광각촬영부터 인물마다 차별화된 액션구성, 어두운 지옥에 신성한 빛이 함께하는 색감부터 세트에 이르는 공간미술, 아날로그 분장 위에 신성함을 드리운 CG, 군더더기기 없는 스토리 진행에 더해진 클래식음악까지 영화 ‘사자’의 제작진이 한 땀 한 땀 들인 공과 흘린 땀이 느껴졌다.

‘청년경찰’로 565만 흥행을 맛본 이들이 ‘내가 잘한 결과’라고 자화자찬하는 대신 사랑과 응원을 보내 준 관객에게 보내는 ‘최고의 보답’으로 신선함과 정성을 택했다. 이미 맛이 검증된 기획영화들을 다시금 택할 확률이 높은 상황, 쉽지 않았을 용기와 열정, 그 정점에 이 모든 것을 주관한 김주환 감독이 있다. 냉정한 영화시장에 공들인 작품을 내놓고 단 한 명의 관객이라도 이 영화의 생김새를 깊게 들여다 봐주길 기다리고 있을 ‘영혼이 젊은’ 감독을 만나러 가는 길, 발걸음이 가벼웠다.

고즈넉한 계단 위, 전망 좋은 서울 삼청로 카페에서 김주환 감독을 마주했다.

영화 ‘사자’는 언제부터 시작됐나요. 첫 질문이었다. 향후 후속편들이 제작되면 더욱 선명히 드러나겠지만 악을 행하는 검은 주교(우도환 분)와 그에게 영혼을 뺏긴 부마자들, 오로지 신의 힘을 빌어 부마자들 내면에 숨어든 악을 끌어내고 종국엔 검은 주교와 맞서는 일에 인생을 건 선한 신부(안성기 분), 아버지의 죽음으로 신의 존재를 부정하지만 아버지를 매개로 신성한 힘을 부여 받은 격투기 선수(박서준 분), 그리고 그들이 공존하는 세상. 공간이 분명하고, 그 안의 캐릭터가 선명하고, 그들의 싸움이 구체적이다. 선한 영향력을 지닌 ‘빛의 사제단’, 그들이 행할 수 있는 신통력과 그 힘의 근원은 물론이고 문양과 구마도구들이 세밀하게 시각화되어 우리 눈앞에 놓여졌다. 검은 주교 쪽도 마찬가지로 손에 잡힐 듯 구조화됐다. 특히 검은 주교와 부마자들에게 악이 깃드는 단계에 따라 변화하는 외양과 행태가 눈길을 붙든다. 이토록 구체적 세계관이 담긴 이야기를 ‘청년경찰’(2017년 8월 개봉) 흥행의 뜨거운 기운이 가시기도 전에 줬다니, 도대체 언제부터 시작된 이야기인지 궁금했다.

“(박)서준 씨에게는 10월쯤 시나리오를 줬어요. ‘사자’는 선과 악의 싸움을 그린 영화예요, 오래 고민해 온 저의 화두입니다. 악마, 그에 맞서는 천사, 악령이 깃든 부마자들과 그들을 구하려는 구마자들에 관한 사진첩을 찾아보곤 했어요. 그런 싸움을 매력적으로 생각했고요. 한국에서 다뤄보지 않았던 형태로 전개되는 선과 악의 싸움이고. 믿음을 가진 사람과 믿음은 없지만 남을 구할 수 있는 선한 마음은 있는 두 인물, 믿음 있는 사람을 통해 자신의 마음이 채워지는 하나의 자아를 보여주는 이야기예요. 거창하게 신의 사자라고 생각하지 않더라도 내 눈앞의 안 신부를 구하는 일, 남을 구원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자신을 구원하는 일이죠. 서준 씨가 연기한 용후처럼 어쩌면 인간은 외롭고 혼자 남겨진 존재들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런 게(자기 구원이) 드라마의 축이에요. 저에게 그런 감정선, 정서가 있지 않나 싶습니다.”

‘사자’의 스토리 라인은 물 흐르듯 흘러간다. 작은 건 놓쳤는데 큰 그림만 그렇다는 게 아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바둑알을 놓듯 스토리 이행 하나, 장면의 바뀜 하나 튀는 데가 없다. 스크린 위에서만 깔끔하게 떨어지는 게 아니라 잘려나간 여분의 촬영분이 거의 없을 정도로 효율적으로 촬영됐다는 후문이다. 김주환 감독은 투자배급사에서 일한 바 있다. 경력이 연출의 경제적 운용에 도움이 됐을까.

“투자배급사 경험이 도움이 됐는지 되지 않았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다만 ‘청년경찰’이 사랑을 받았고 보답하고 싶은 마음이 제가 이번 ‘사자’를 연출함에 있어 모든 과정에 원동력이 됐다는 건 말씀 드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저의 오랜 숙제가 중요했죠. 무섭되 너무 무섭지 않게, 너무 잔인하지 않아야 하지만 악의 본질은 정확히 보여드려야 하는 숙제를 풀어야 했어요. 그리고 그 모든 건 사람이 사람을 구하는 이야기로 귀결돼야 했고요.”

“매 현장에서 저도 욕심이 일고 고민이 컸죠. 많이 찍어 두면 분명 편집할 때 도움이 될 거예요. 하지만 감독이 있는 이유는 찍을 만큼 다 찍어 두는 걸 줄이고, 감독의 현명한 시뮬레이션과 빠른 판단으로 테이크를 줄이는 부분도 있다고 생각해요. 한 장면을 너무 여러 번 찍으면 스태프가 힘들고 배우도 감독에 대한 신뢰가 떨어질 수 있지 않을까요. 다 같이 즐겁게 일하되 최선의 결과를 뽑아내도록 모두가 같이 노력하지만 현장에서는 감독의 몫이 크지 않나 싶습니다. 연출은 음식 만들 때 간 맞추는 것과 비슷한 것 같아요, 더 가야 하나 멈춰야 하나를 결정하는 거죠. 그 결과로 빚어진 ‘사자’가 흥행이 잘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지만, 대중을 상대로 한 ‘깊이 있는’ 성찰을 한 것만큼은 말할 수 있습니다.”

일테면 손님들이 새 메뉴를 선보이라고 아우성치지 않았는데 음식점 주인이 신 메뉴 개발에 나선 게 영화 ‘사자’이다. 오늘은 낯설 수 있지만 내일은 우리가 즐기게 되리라. ‘구마 판타지 히어로 액션물’이라고 불러야 할까. 반인반신의 데미갓도 아니고 타고난 초능력을 지닌 뮤턴트도 아닌, 18전 무패의 월터급 세계챔피언 격투기 선수일 정도의 신체적 능력 외에는 그저 인간이었던 박용후가 검은 악마를 물리치는 이야기. 용후를 초능력 히어로로 만드는 것은 신이 허락한 힘, 신성한 주먹. 이런 마법 같고 꿈같은 이야기를 세상에 꺼낼 용기는 어디서 나왔을까.

“판타지를 현실의 스크린에 구현한다는 일에는 기술력이 중요해요. 그런데 그 기술력이 현재 어디가지 왔는지 아무도 모르죠, 시도해 보기 전에는. 그걸 알아보고 싶은 마음이 제게 있었죠. 무턱대고 다해 보는 게 아니라, 이 예산으로 뭘 할 수 있는지 확인해 보며 강도나 균형을 찾으려 노력했습니다.”

“사람을 보고 사람에서 배운다. 제가 생각하는 철칙이기도 하고 현장에서 다시금 배우게 되는 진실이기도 한데요. 용후가 아버지를 보고, 안 신부를 보고, 최 신부나 수녀님, 만나는 여러 사람들을 보며 배워 나가잖아요. 이 영화를 만들면서 관객들이 어떻게 보실까 고민이 많았어요. 원래도 제게 있겠지만 새로운 것을 하다 보니 두려움이 많았어요. 기본적으로 어떻게 해석될지 모르겠지만, 관객에게 좋은 것을 보여드리고 싶었고 재미있고 따뜻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진심은 전해지기를 바랍니다. 조롱거리가 될 수도 있지만 새로운 것을 보여드리고 싶은 스토리텔러로서의 욕심도 분명 있었고요.”

새로움과 정성이 가득한 영화에 관객을 위한 마음만 부각시키지 않고 개인적 욕심도 분명하게 밝히는 감독. 단어 하나, 문장 한 줄도 거짓되지 않게 말하려 노력하는 마음이 전해졌다. 사람이 사람에게 배워, 사람이 사람을 구하는 영화, 타인을 구함이 결국 자기 구원이 되는 이야기를 전하는 감독다운 정직함이었다. 자기 구원의 이야기는 잠시 안성기 배우로 흘러들었다.

“용후의 자기 구원에 관한 이야기, 맞는 것 같아요. 그 중심에는 안 신부의 사랑이 있고, 안성기 선배님이 안 신부세요. 제가 힘들 때, 또 제가 어떻게 모든 걸 알겠어요, 확신이 없을 때도 단서를 주시고 시간을 주시고 옆에 계셔서 믿고 간 게 맞습니다.”

“기도랑 저주랑 부딪히는 장면이 걱정 됐어요. 인과관계를 만들어 놓긴 하지만 관객이 안 신부를 믿어야 그 선의 승리가 설득되는 건데. 안성기 선배님이 워낙 믿음 깊은 천주교 신자이기도 하지만 (악의 저주는 현실적으로 너무나 강력하고 선의 기도는 신념이 전부이므로) 걱정이 있었어요. 그런데, 현장에서도 그랬지만 편집하며 다시 볼 때도 소름이 돋았어요. 그 순간에 어떤 빛이 함께하시는 것 같다 할까요. 저를 위해 만든 영화는 아니지만 전방에 있는 관객의 한 명으로서 ‘멋있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성 자체가 캐릭터가 되어 안 신부를 빛내고 영화를 살린 배우 안성기. 고마운 선배 얘기를 하라 하면 밤을 새도 모자랄 것 같은 기세. 강물의 본류로 돌아와 감독 김주환의 신 메뉴 개발 이야기를 이어갔다. 특히나 불꽃이 솟는 주먹, 한국영화에선 처음 보는 히어로의 무기이자 재능이자 신성함 아닌가.

“불주먹을 얻기 위한 싸움이잖아요. 주먹을 얻음으로써 안 신부를 지키고 악이 깃든 누군가를 구할 힘이 생겨요. 불꽃이 솟는 주먹, 좋아하는 분도 계시지만 낯설 수 있죠. 저는 ‘마음이 젊은’ 관객들이 영화를 보는 방법이 바뀌었다고 생각합니다. 훨씬 능동적이고 시리즈물을 좋아하고, 캐릭터가 다음 시리즈에서다시 나오는 것을 즐기고. 10년 전에만 해도 없었던 관객의 놀이 법이 생겼어요.”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관객에 대한 믿음으로 시작한 도전. 그 핵심이라 할 불주먹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모습에서 소년이 보였다.

“격투기 선수로서 자신을 위해 싸우던 용후가 타인을 위해 싸우는 영웅이 되는 영화잖아요. 현실극이 아닌 만큼 재미있어야 한다, 멋있어야 한다 생각했어요. 현실극에서 주고받는 주먹싸움이 아니라 불주먹이 환상적인 싸움으로 보여야 했고요. 관객도 연령의 문제가 아니라 열려 있는 게 중요하듯이, 제게도 진짜 도전이거든요. 불주먹, 어떤 분들은 뭐 참조했느냐 물어보시기도 하는데 참조한 건 없어요. 단계를 다 둔거거든요.”

“용후가 신을 부정하고 그 틈에 악마가 끼어들던 단계부터 부적응 상태에서지만 손바닥에 나타난 신성한 힘을 받아들이게 되고, 이게 만약 성스러운 힘이라면 자기가 아니라 타인을 위해 써야 한다고 생각하는 단계. 구마에도 단계가 있어요. 666마리의 악령을 짊어지고 있는 세 번째 구마자, 그 아이가 처음으로 용후가 마음으로 구마하는 거죠. 마지막 싸움에는 이제 손바닥의 신성을 불 지필 성수도 없고, 그런데 상대는 자기 심장까지 악마에 바쳐가며 선을 죽이겠다는 살기로 덤비고. 그 절박한 순간에 불꽃이 솟는 거죠.”

그랬다. 그 순간 용후의 손바닥에서 불꽃이 솟기를 바랐고 불길은 더 거세길 염원했다. 검은 주교 지신이 선을 소멸해 우리를 삼키기 전에 용후가 미약한 인간에서 강력한 히어로로 승화하길 기원했다.

“히어로는 낯섦과 새로움 사이에 있는 단어예요. 손에 불이 있든 없든 첫 번째 히어로는 안 신부이고 그 역할을 물려받는 신세대가 용후죠. 실제로 안성기 배우는 레전드 중의 레전드임을 만나보고 협업해 보니 알겠더라고요. 박서준도 그 뒤를 잇는 좋은 배우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진실된 이야기, 공들여 영화 만들 듯 한 자 한 자 꼭꼭 눌러 글씨 쓰듯 전하는 이야기를 다 전하지 못 하는 게 아쉽다. 인터뷰 막바지에 물었다. 감독 김주환의 가장 큰 장점, 단점을 말해 주세요.

“장점은 사람을 좋아합니다. 단점은 사람을 좋아랍니다. 액션 장면 찍을 때 과감하게 찍고, 컷 좋은 것 나올 때까지 버텨야 하는데 그러지 못 해요. 배우도 스태프도 서로 안배해야 하니까요. 다 친한 분들 아니면 일하며 친해졌거나. 인간 대 인간으로서 보이잖아요, 고통스러워하는 게. 그걸 모른 척하면

컷이 풍성하고 샷이 좋을 수 있겠죠. 하지만 전, 다음에 영화 찍을 때 변한 내가 어떻게 투영될까? 이런 생각을 늘 해요.”

“인간이 돼야 따뜻한 영화가 나온다는 말을 믿습니다. 무자비해지기 쉬워요, 편리하고 간단해요. 저 혼자만의 힘은 아니고 절 얼마나 아껴주시는지, 저는 보답하려고 하는지가 관건이라고 생각합니다. (영화 찍는) 기계가 되지 않으려 경계합니다.”

합이 맞는 대화 속에 시간은 화살처럼 날아 질문이 많이 남아 있는 상황, 마지막 질문으로 이걸 택했다. 감독 김주환은 영화를 통해 어떤 세상을 보여 주려 하는 건가요?

“사람이 사람을 구한다. ‘청년경찰’도 ‘사자’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현실에서 없기 때문에, 사실에서 없는 것으로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는 것이 문화라고 생각해요.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을 구했다는 뉴스를 보기 힘든 세상이에요. 영화라도 그런 지점들을 멋있게 얘기해야 하는 게 아닌가 합니다. 서로를 구하는 게 익숙하지 않게 새로운 세상 안에서 해내는 게 저의 고민입니다.”

홍종선 대중문화 전문기자 neocross@viewer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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