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에 길을 묻다] 내가 사람들 속에 어떤 존재인지 알고 싶다면…
[책에 길을 묻다] 내가 사람들 속에 어떤 존재인지 알고 싶다면…
  • 유명준 기자
  • 승인 2019.07.17 15: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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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있지만 쓸쓸하지 않아' 본문 P92
'혼자 있지만 쓸쓸하지 않아' 본문 P92

 

어느 정도 사회생활을 하고 나이가 들었다고 생각하면 흔히 착각하는 게 ‘사람을 안다’라는 자신감이다. 기자 생활 10년차가 넘는 시점에 이런 자신감은 절정에 달했다. 매일 점심, 저녁에 사람을 만났고,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을 인터뷰 하며 ‘100%는 아니지만, 80%이상은 사람을 파악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휴대폰에 저장된 전화번호가 수천 명 단위로 넘어가서면서는 더욱 그랬다.

아마 이 때부터 인간관계에 대한 서적이나 조언을 잘 듣지 않았던 거 같다. 오히려 내가 어떤 기준을 삼고 ‘무모한’ 조언을 서슴없이 했다. 이 기준의 바탕에는 사회에서의 내 위치나 성향, 그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어느 정도 파악했다는 생각이 깔려 있었다.

좀 더 시간이 지난 후, 그리고 꽤 오랜 시간 기자 일을 쉴 때 나의 이런 생각은 교만이었고, 착각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사람들을, 그리고 그 사람들은 나를 기계적으로 만났을 뿐 교감을 제대로 한 이는 드물고, 서로에 대해 ‘알아가는’ 사람도 손에 꼽을 정도였다. 매일, 매주 보던 사람들과 일정한 시간 만나지 않거나 거리를 두고 보면서 나를 향한 그들의 생각과 마음, 그들을 향한 내 생각과 마음이 잘못 알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물론 이 역시도 확신은 안 섰다. 자신감은 사라졌고, 공허함이 남았다. 결국 우리는 모두 적지 않은 나이와 만남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사람을 ‘안’ 것이 아니라, 그저 서로 ‘본’ 것뿐이다. 나이 헛먹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치데라 에그루가 지은 ‘혼자 있지만 쓸쓸하지 않아’를 읽은 이유는 ‘옮긴이의 말’ 때문이었다. 한번에 쭉 훑어볼 때까지만 해도 영국에 사는 23살의 유명 블로거의 가벼운 조언집 정도로 생각했다. 그가 살면서 느낀 감정들을 나열했다는 느낌이 들었고, 디자인 역시 키치 분위기가 풀풀 풍겨 가벼웠다. 그런데 황금진 번역가의 ‘옮긴이의 말’이 이런 마음을 알아챘다.

“(전략) 이 책을 처음 검토했을 때 사실 나는 회의적이었다. 예쁜 그래픽과 띄엄띄엄 있는 텍스트, 게다가 20대가 인생 조언?(지금 생각해보면 이 역시 나의 편견이었다) 평소 텍스트가 너무 적은 책은 왠지 돈이 아깝다는 생각에 일단 제쳐두었던 나였기에 이 책 역시 화려한 색채와 싸이월드에나 적을 법한 감성 문구로 독자들의 주머니를 노리는 게 아닐까 의심했던 것이다. 그런데 웬걸? 다 읽고 나니 이 치데라 에그루라는 사람이 부러워졌다. 스물셋이라는 이른 나이에 이렇게 깊은 인생의 진리를 깨닫다니! 나처럼 엄마 말을 흘려듣지 않고 이렇게 잘 새겨듣다니! 특히 그중 이 말은 나에게 큰 울림을 주었다. ‘네 시간을 존중하지 않는 사람은 너도 존중하지 않는 거야.’ (중략) 40대가 20대에게 위로받을 수 있다는 것도, 나이와 지혜가 정비례하지 않는다는 것도 새삼스럽게 깨달았다(후략)”

황금진 번역가의 글을 읽고 다시 처음부터 천천히 읽어봤다. 맞다. 나이와 지혜는 정비례하지 않는다. 얼마나 다양한 (‘많은’이 아니다) 경험을 했고, 얼마나 깊이 생각했으며, 그런 과정을 거쳐 자신에 맞는 통찰력을 가졌는지가 중요하다. 치데라 에그루의 책은 이를 잘 증명했다.

책은 크게 세 파트로 나뉜다. ‘YOU’ ‘THEM’ ‘US’다. 저자의 입장에서 ‘당신’에 대해 냉냉하게 이야기한다. (그 ‘당신’이 나다). 그리고 제3자인 저자가 나와 나의 주변 사람들에 대한 관계를 분석한다. 그리고 마지막은 ‘우리’가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 말해준다.

저자는 우선 내가 나에게 어떻게 집중하고 바라봐야 하는지 알려준다. ‘스스로 사랑받을 자격이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라는 다소 식상한 말로 시작하기도 하지만, ‘상황이 나아지는 것이 아니다. 네가 나아지는 거지’ ‘너를 바꿀 필요는 없다. 우선순위만 재정비하면 된다’ ‘좋은 사람이 되려고 셀프 고생을 하지말자’ ‘우리는 이루지 못한 목표, 도달하지 못할 것 같은 꿈에 연연해서 우리가 얼마나 마법 같은 존재인지 깨닫지 못하고 있어’ 등의 현실적인 조언도 해준다.

이후 책은 내 주변사람들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를 말한다. ‘남들 때문에 생기는 네 감정을 바꾸는 건 너한테 달렸어’라고 시작한 저자는 사람들이 어떤 말과 행동으로 나를 평가하고 옥죄는지를 언급한다. 그러면서 내가 어떻게 그들을 대하고 때론 무시해야 하는지, 그런 관계 속에서 내가 어떻게 나를 만들어 가야 하는지 길을 제시한다. 그리고 이제 ‘우리’에 대해서 말한다. 어떤 사람을 만나지 말아야 하는지, 어떤 감정으로 사람에게 다가가야 하는지, 사랑에 대해 만남에 대해 풀어 놓는다.

 

이 책이 흥미로운 것은 저자의 특별한 경험이 적절한 타이밍에 적혀있다는 점이다. 나이지리아 이그보우족인 저자은 어머니에게 들은 나이지리아 속담과 표현을 책에 녹인다. 또 흑인이기에 백인들에게 받은 차별과, 그를 통해 사람을 어떻게 바라봐야하는지를 말한다.

일례로 “닭이 개 시체를 보는 건 괜찮지만 개가 닭 시체를 보면 안된다‘라는 어머니 말을 전한다. 이유는 개가 죽은 닭 시체를 보면 누가 봐도 개가 닭을 죽였을 거라고 넘겨짚는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닭은 백인이고, 개는 흑인이라는 점을 언급한다. 그러면서 저자는 단순히 사람 관계를 넘어 사회 속 관계에 대해 지적한다.

책을 꼼꼼하게 읽고 나면 적지 않은 사람들이 “어 들어봤던 이야긴데” 혹은 “이미 여러 번 생각했던 것인데”라는 반응이 나올 것이다. 그런데 그것을 담담하게 글로 풀어내 자신과 주변을 돌아보게 하는 것은 쉽지 않다.

책을 한번 읽었다고 갑자기 나에 대해, 사람의 관계에 대해 뚜렷한 기준이 생기고 엄청난 내공이 생기지는 않는다. 그러나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경험한 사람들과의 관계가 어떠했는지는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다시한번 ‘나’에 대해 돌아볼 여유가 생긴다. “당신 인생에서 첫 번째 사람은 바로 당신이라는 것을 일깨워준다”는 해외 독자평처럼 말이다.

유명준 기자 neocross@viewer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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