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를 읽다] '82년생 김지영'→'사하맨션' 조남주의 상식적 세상
[작가를 읽다] '82년생 김지영'→'사하맨션' 조남주의 상식적 세상
  • 문다영 기자
  • 승인 2019.06.06 1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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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민음사 제공)
(사진=민음사 제공)

“최근 이 책을 읽었어요”

여자 아이돌의 이 한마디에 극성 남성팬들이 책을 불태우고 그의 사진을 찢었다. 페미니스트 선언을 한 것이라고도 몰아붙였다. 레드벨벳 아이린을 수세에 몰고 간 책은 조남주 작가의 ‘82년생 김지영’이다.

논란 속에서도 잘 팔리는 책. 2009년 신경숙 작가의 ‘엄마를 부탁해’ 이후 9년 만에 밀리언셀러가 된 ‘82년생 김지영’은 출산 후 경력 단절 위기를 겪은 전직 방송작가의 손에서 탄생했다.

■ 전직 방송작가, 육아에서 온 상실감을 글로 메우다 

조남주 작가는 이화여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시사교양 프로그램 작가로 10년 동안 일했다. 메인작가가 되기 위해 내달렸지만 아이가 태어난 후 그의 삶은 이전과 달라졌다. 극심한 상실감에 소설을 쓰기 시작했고 2011년 장편소설 ‘귀를 기울이면’으로 문학동네소설상을 받으며 새로운 직업을 갖게 된다. 2016년 장편소설 ‘고마네치를 위하여’로 황산벌청년문학상을 받은 그는 같은 해 출간된 ‘82년생 김지영’으로 국내에서 가장 유명한 작가 중 한 명이 됐다. 세계 각국으로 번역됐고, 특히 가부장적 분위기가 비슷한 일본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 가운데서도 그는 여전히 초등생 딸을 둔 엄마다. 아이가 하교할 시간이 짬을 낼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라 밀려드는 강연과 인터뷰를 고사했다는 후문이 돌 정도다.

조남주 이름 앞뒤로 가장 자주 붙는 수식어는 페미니즘, 그리고 ‘82년생 김지영’일 수밖에 없다. 그의 대표작이자 현 시대 여성들의 상황을 잘 그려낸 것으로 평가받는 이 대표작은 한국 사회 여성들이 학교와 직장에서 받는 차별, 고용시장에서 겪는 불평등, ‘독박 육아’의 현실, 경력 단절 문제 등을 다뤘다. 혹자의 말마따나 이전 세대와는 달리 차별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세대적 감수성이 녹아져 있기에 거둔 성공임은 분명하다. 이와 동시에 조남주 작가는 젠더 이슈의 중심에 선 인물로 인식되기도 한다. 다행히 그는 이같은 시선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는 동아일보와 인터뷰를 통해 앞으로 작가 인생에서 ‘82년생 김지영’은 떨어지지 않는 수식어가 될 것 같다면서 “한 번 불합리한 상황에 눈뜨고 나면 이전으로 되돌아갈 수 없듯이 이 작품이 내게 그렇다. 돌아갈 수 없는 지점에 서 있다고 생각한다”고 일각의 부정적 시선과 편견에 개의치 않는 모습을 보였다.

그의 행보는 이 말대로 이어졌다. 문제작 혹은 화두작에 이은 작품은 ‘현남 오빠에게’였다. 이 역시 여성이 처한 부조리한 현실을 짚어낸, 메시지가 분명한 작품으로 손꼽힌다. 이후 독자 앞에 선보인 첫 소설집 ‘그녀 이름은’ 역시 마찬가지다. 60여 명의 여성들을 만나 인터뷰 후 신문에 기고하던 르포기사를 28편의 짧은 소설들로 재구성한 것으로 직장 내 성폭력을 고발하고 결혼과 이혼 때문에 갈등하거나 파업 현장에서 싸우는 여성 등 나이, 직업이 다른 동시대 여성 28명의 문제를 직접적으로 다룬 작품이다. 이쯤되면 젠더 이슈 한가운데서 선봉장으로 나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행보다.

(사진=민음사 제공)
(사진=민음사 제공)

■ 페미니즘 선봉서 인간이 직면하는 한계로, 의미있는 발걸음 

조남주 작가는 페미니즘에 천착하게 된 것을 감추려 하거나 두려워하지 않았다. 다만 이는 현재 한국사회에서 변질됐다고까지 여겨지는 페미니즘의 모습이 아니기에 가능한 것이기도 하다. 조남주 작가는 오직 현재의 삶을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을 기록하는 데 집중한다. 특정 성별이 우위에 있다거나 한 성별을 위해 다른 성별을 차별하자는 목소리가 아니라 현 사회 속에서 한 인간이 얼마나 열심히 살았고 어떤 한계에 부딪혔는지를 보여준다. 이같은 시선은 조남주라는 이름이 현 사회 젠더 이슈의 중심에 설 수 있게 했고, 기대받는 작가로 여겨지게 했다.

더 나아가 그는 폭을 넓히기 시작했다. 작가적 시선을 여성에만 국한하지 않고 인간의 삶에 있을 수 있는 한계와 소외된 곳에 조명을 비춘다. 지난 5월 28일 출간한 ‘사하맨션’은 기업의 인수로 탄생한 기묘한 도시국가와 그 안에 위치한 퇴락한 맨션을 배경으로 국가 시스템 밖에 놓인 난민들의 공동체를 그린 작품이다. ‘82년생 김지영’이 경력단절 여성의 절망감을 통해 성차별의 현실을 기록했다면 ‘사하맨션’은 발전과 성장으로부터 거부당한 사람들의 절망감을 통해 소외된 삶의 현재와 미래를 상상하고 있다.

만약 그가 이번에도 여성에 대한 이야기를 써냈다면 대중은 그에 대해 실망했을 지도 모른다. “저 작가는 여성 이야기만 쓰는 사람” “페미니스트 작가” 정도로 불렸을 수 있다. 그러나 그는 영특하게도 여성에 대한 시선을 ‘인간’으로 확대했다. 성별 중심의 이야기에만 고착화하지 않으려 하는 ‘사하맨션’과 같은 움직임은 작가, 조남주의 가치와 가능성을 더욱 기대하게 하는 터닝포인트가 됐다. 조남주 작가는 이 사회에서 살아가는 인간군상들의 면면을 보다 구체적이고 세세하게 파헤치며 이른바 ‘현타’(현실 자각 타임을 줄여 이르는 말. 헛된 꿈이나 망상 따위에 빠져 있다가 자기가 처한 실제 상황을 깨닫게 되는 시간)를 선사하고 있다. 그가 지금껏 내놓은 작품 스타일로 봐서는 앞으로도 대중이 당연한 것이라 생각해 온 비상식적 틀을 깨뜨리는 문제들을 작품을 통해 제기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이는 “어쨌든 우리는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그의 말마따나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의미 있는 한걸음이 될 것이다. 국내 대표 작가로 빠지지 않고 이름을 올리는 그를 더이상 페미니스트 작가로만 불러선 안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 조남주 작가 작품을 소개합니다

 

문다영 기자 dymoon@viewer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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