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를 읽다] 히가시노 게이고, 경이로운 다작의 비결
[작가를 읽다] 히가시노 게이고, 경이로운 다작의 비결
  • 문다영 기자
  • 승인 2019.04.24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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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KBS1 뉴스화면 캡처)
(사진=KBS1 뉴스화면 캡처)

[뷰어스=문다영 기자] 환갑을 넘긴 히가시노 게이고는 경이로운 작가로 분류된다. 데뷔 후 지금까지 수백 권의 작품을 발표했다. 독보적인 다작 능력 때문에 혹자는 히가시노 게이고를 ‘은둔형 외톨이’ 스타일의 작가일 것이라 추측하고, 다양한 소재와 매번 다른 접근법에 엄청난 다독가일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모두 맞는 말일 수 있지만 적어도 어릴 적의 그는 책만큼은 결코 가까이 하지 않았던 소년으로 알려진다. 그리고 이 경험은 대중을 홀리는 작가의 밑거름이 됐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으로 2012년 중앙공론문예상을 수상했을 당시 그의 수상 소감이 그가 어떤 마음으로 글을 쓰는지를 잘 알려준다.

“어렸을 때, 나는 책 읽기를 무척 싫어하는 아이였다. 국어 성적이 너무 좋지 않아서 선생님이 어머니를 불러 만화만 읽을 게 아니라 책도 읽을 수 있게 해달라고 충고하셨다. 그때 어머니가 한 말이 걸작이었다. ‘우리 애는 만화도 안 읽어요’ 선생님은 별수 없이, 그렇다면 만화부터 시작하는 게 좋겠다고 했다. 나는 작품을 쓸 때, 어린 시절에 책 읽기를 싫어했던 나 자신을 독자로 상정하고, 그런 내가 중간에 내던지지 않고 끝까지 읽을 수 있는 이야기를 쓰려고 노력한다”

(사진=YTN 방송화면)
(사진=YTN 방송화면)

■ 마성의 작가, 그 매력 셋

오사카 부립대학 전기 공학과를 졸업한 젊은 엔지니어는 일하면서 틈틈이 소설을 쓰기 시작했고, 전업 작가가 됐다. 독자가 한번 손에 쥐면 끝까지 읽어내고야 말 책을 쓰겠다는 그의 다짐은 ‘지켜지고’ 있다. 보통 작가들이 한 작품을 내는 데 몇 년이 소요되는 것과 달리 히가시노 게이고는 몇 달에 한 번씩 작품을 낸다. 글 좀 쓴다 하는 사람들까지도 혀를 내두를 정도로 속속 작품을 쏟아내는데 그 작품들이 평균 이상의 재미를 보장한다는 점이 경이롭다. 히가시노 게이고 책이 나왔다 하면 무조건 베스트셀러 순위에 안착한다. 교보문고가 지난 2009년부터 올해 1월 중순까지 집계한 소설 누적 판매량 결과는 히가시노 게이고란 이름이 보증수표라는 점을 증명하는 단적인 예다. 10년여 간 히가시노 게이고가 약 127만부를 판매해 1위에 올랐다. 작품이 많기도 하지만 그만큼 독자들을 푹 빠지게 했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히가시노 게이고는 어떻게 가장 사랑받는 소설가가 될 수 있었을까. 이는 그의 작품을 통해 고스란히 드러난다. 첫 장부터 흥미진진하게 전개되는 흡인력, 마지막장까지 긴장감을 유지해나가는 촘촘한 구성은 독자에게 책 읽는 재미를 제대로 선사한다. 이에 더해 그만의 특장점, 그리고 스펙트럼 확장이 독자들로 하여금 그의 작품을 놓을 수 없게 만든다.

그의 주 장르는 추리소설이지만 그는 살인의 현장이나 과정을 조명하는 대신 범행의 동기, 심리적 개연성에 초점을 맞춘다. 이 점은 읽는 이의 혐오감을 줄이는 동시에 작품에 인정(人情)을 불어넣는다. 추리소설 결말이 으레 ‘진짜 나쁜 놈’ ‘잡아서 다행이다’로 끝나는 것과 달리 히가시노 게이고 작품 속 대부분의 범인들은 십분 이해가 되는 동기를 갖는다. 이를 통해 독자들은 이해할 수 없는 사이코패스를 접할 때보다 더 친숙한 현실감을 갖게 되고 감정 이입을 하게 된다. 책장을 덮은 후 ‘나였다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을 갖게 된다.

절대적 매력은 ‘사회성’이다. 그는 꾸준히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는, 혹은 쟁점이 될 만한 사안들을 작품 안으로 끌어들인다. 그는 거침없이 사형제도, 뇌사 판정 등 누구나 알지만 결코 깊게 생각해보지는 않았던 사안들을 흥미로운 스토리에 녹여내며 사회적 문제들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선사한다. 늘 비교선상에 오르는 무라카미 하루키처럼 매년 노벨 문학상 후보에 오를 만한 작품성은 아니라 해도 ‘킬링타임 소설’이라 치부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사진=영화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스틸컷/(주)이수C&E)
(사진=영화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스틸컷/(주)이수C&E)

■ 독자 가장 가까이서 숨쉬는 이야기꾼

여기서 더 나아가 히가시노 게이고는 종종 추리소설로 분류하기 ‘아까운’ 작품들을 선보이고 있다. 공대생 출신의 장점을 살린 SF 미스터리 소설, 취미를 부각한 겨울 스포츠 관련 작품을 차치하고라도 히로스에 료코 주연 영화로 국내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았던 동명 원작 ‘비밀’, 국내에서만 36만부가 팔린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그리고 최근 베스트셀러 순위를 점령하고 있는 ‘인어가 잠든 집’ 등을 꼽을 수 있다. ‘비밀’은 교통사고로 딸의 몸에 남은 아내의 영혼을 마주한 남자의 고뇌를 그렸다. 정통 추리 소설로 분류하긴 힘들지만 상상 이상의 반전이 그를 스타 작가 반열에 올렸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은 그가 그간 작품에서 선보여왔던 인간미를 극대화한 작품으로 읽는 이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만든다. ‘인어가 잠든 집’은 ‘비밀’이나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보다 더 과감한 한발을 내딛은 작품이다. 이렇다 할 추리적 장치나 반전 하나 없이도 책을 놓을 수 없게 만든다. 물리적 장치에 의해 삶을 연명하는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과 사회의 시선을 담아낸 이 작품은 히가시노 게이고가 추리소설작가의 범주에서 완전히 벗어나며 자신의 한계를 한번 더 극복했다는 생각을 갖게 만든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데뷔 후 10여 년 간 수상과는 거리가 멀었다. 어려운 단어가 없고 기교를 부리지 않은 문장은 독자들에겐 읽기 쉽지만 일본순수문학계의 비평 대상이 돼야 했다. 문학적 권위를 거머쥐거나 젠 체하는 작품 대신 독자에 가장 가까이 다가설 수 있는 이야기꾼의 길을 택한 셈이다.

그 이유는 착각에 대한 경계를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마이니치(每日)신문과 인터뷰에서 “직장에서는 모두 명함을 지니고 있고, 회사에는 힘이 있다. 그런데 그걸 자신의 힘이라고 착각한다. 착각에 빠지지 않기 위해 늘 자문해야 한다. 명함이 없는 나는 누구이며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이것이 바로 그가 독자 가장 가까이에서 숨쉬며 다작할 수 있는 이유다. 인기 있는 작가, 저명한 작가가 되었다는 성과에 대한 도취가 없다. 오직 작가라는 직함을 뺀 히가시노 게이고란 사람이 매 작품, 원점에서 다시 출발할 뿐이다.

 

문다영 기자 dayoungmoo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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