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를 읽다] 한강의 심장이 가장 뜨겁게 뛰는 때
[작가를 읽다] 한강의 심장이 가장 뜨겁게 뛰는 때
  • 문다영 기자
  • 승인 2019.04.09 16: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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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창비)
(사진=창비)

[뷰어스=문다영 기자] “마치 달팽이처럼 기어서 무척 애쓰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맨부커상을 수상하며 국내 문학계를 뒤흔든 한강 작가의 20대는 달팽이로 표현된다. 작가로 데뷔하기 전 2년 정도 출판과 잡지 편집일을 했던 그는 아주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앞으로 나아가며 자신의 길을 찾아나섰다.
 
1970년 광주에서 태어난 한강 작가는 가족과 함께 ‘5.18 민주화운동’이 일어나기 몇 달 전, 서울로 이사해 자랐다. 연세대에서 국문학을 공부한 그는 1993년 계간 ‘문학과 사회’ 겨울호에 시를 발표했고 1994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붉은 닻’이 당선되며 작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오늘의 젊은예술가상, 한국소설문학상, 이상문학상을 거머쥐며 평단의 인정을 받던 그는 ‘채식주의자’의 맨부커상 수상을 기점으로 이른바 주류 작가 반열에 올라서는 데 성공했다.

절제된 차분함, 텅 비어 있는 곳에서 꽉 채운 감정의 소용돌이를 느끼게 만드는 창조자. 한강 작가는 소위 말하는 금수저나 유전적 이득을 본 이로 치부하기 힘들다. ‘아제아제 바라아제’ 한승원 작가의 딸인 그가 드러내는 재능을 두고 많은 이들이 부친의 유전자를 물려받은 것으로 평가한다. 그러나 그보다는 엄청난 노력과 성실성이 지금의 한강 작가를 만든 주역이다. 글을 너무 써서 타자를 치기 힘들 정도로 팔이 마비됐을 때 볼펜 두 개를 손에 들고 키보드를 꾹꾹 눌러가며 글을 썼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지독할 정도의 노력파, 한강 작가의 성격은 작품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포기하지 않는 집요함으로 인간 내면의 밑바닥까지 파고들고야 만다. 그러나 그 방식은 결코 적나라하거나 가볍지 않다. 화려한 서사도 없다. 그저 차분하게, 무감정에 가까운 어조로 인간의 내면을 담담하게 주시한다. 무채색에 가까운 표현법이 오히려 읽는 이의 피를 끓어오르게 만든다. “언제나 심장 뛰는 인간을 쓰고 싶다”는 한강 작가의 바람은 그가 써내려간 글이 독자에게 닿고 나서야 실현된다. 

(사진=문학과 지성사)
(사진=문학과 지성사)

■ 질문하는 작가, 한강

한강 작가의 아버지는 딸이 어릴 적부터 어둠을 응시하는 공상가였다고 말한다. 실제 한강 작가의 소설을 접한 많은 이들이 문체가 어두워서 ‘무겁다’ ‘무섭다’는 평가를 내놓기도 한다. 이같은 시선에 대한 그의 답은 정반대다. “내 소설이 어둠을 다루고 있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언제나 인간에 대해, 체온을 가진 인간, 심장이 뛰는 인간에 대해 쓰고 싶다” (머니투데이와 인터뷰 중)

‘붉은 닻’ 이후 어느새 25년째. 한강 작가는 데뷔 때부터 신세대 작가와는 다른 결을 보여줬다. 정통적 소설 문법과 섬세한 감수성, 그리고 비극적 세계관을 특징으로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해왔다. 무엇보다 그의 작품들은 모두 독자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작품의 깊이가 남다르고 때론 난해해보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2016년 ‘흰’ 출간기념회에서 자신의 작품들에 대해 직접 설명한 발언이 한강 작가의 작품 세계를 더욱 이해하기 쉽도록 돕는다.

“‘채식주의자’는 불편할 수 있는 작품이다. 독자 분들께 부탁을 한다면, 이 소설을 질문으로 읽어주셨으면 좋겠다. ‘우리가 이토록 폭력과 아름다움이 뒤섞인 세계를 견딜 수 있는가, 껴안을 수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끝나는 소설이다. 그 다음 장편 소설 ‘바람이 분다, 가라’는 ‘우리는 삶을 살아내야 하는가, 그것이 가능한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 ‘희랍어 시간’은 ‘정말 우리가 살아내야 한다면, 인간의 어떤 지점을 바라보면서 그것이 가능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다”

이후 작품인 ‘소년이 온다’의 경우는 ‘인간의 연하고 섬세한 자리를 들여다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써내려갔다는 것이 그의 설명. 5.18 민주화운동 당시를 다룬 이 작품은 압도적인 폭력이 놓여진 상황에서 밝음을 향해 나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려냈다. 다만 한강 작가는 이 작품을 쓰면서 자신의 질문이 변했고, 출간 후에는 인간의 밝고 존엄한 과정을 바라보고 싶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소설을 통해 독자들과 질문을 주고 받고 자신 안에서 답을 찾아가며 성장을 거듭한 셈이다.

(사진=창비)
(사진=창비)

■ 빛 속에서도 결코 자만하지 않는

그가 한국 문학계의 거목으로 자라나기 위해 단단히 뿌리를 내리는 동안 해외 평단이 그를 알아봤다. ‘채식주의자’ 출간 10년 만에 세계 3대 문학상 중 하나인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을 수상한 것. 영화화되기까지 했음에도 10년 동안 단 2만부가 판매됐던 이 작품은 수상 발표 후 그 해에만 60만부의 판매고를 올렸다. 영국에서도 15만부 이상 팔렸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대단해서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수상 후 첫 공식석상에서 그가 한 말은 한강이라는 작가가 세간의 평가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의 문학세계를 구축해나갈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한다. 그는 수상 후 변화에 대해 “(지하철에서)아무 일도 생기지 않았다”는 농담으로 변한 건 없다고 강조했다. 출판계와 언론이 모두 떠들썩하게 대서특필해대는 마당에 그는 초연하게 자신의 수상을 기뻐해준 이들의 “마음을 헤아려봤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자신이 바라는 것은 맨부커상 수상이 화제가 되지 않을 만큼 한국 문학계에서 더 좋은 일들이 많이 일어났으면 좋겠다는 것이라고 언급했다. 한국 문학 속에서 자라났기 때문에 큰 애정과 빚이 있다는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발언이었다.

겨울에 글을 가장 많이 쓴다는 그다. 어릴 적 몸에 새긴 차디찬 겨울에 대한 감각 덕분에 작가가 될 수 있었다는 그는 추운 날씨가 인간의 몸이 얼마나 따뜻하고 연약한지 느낄 수 있게 하고 살아있다는 것을 강렬하게 체험하게 한다고 말한다. 어쩌면 한강의 소설은 하얀 겨울과 가장 닮아 있다고 볼 수 있겠다. 그 겨울 한가운데 서 있기에 그가 전하는 온기는 더욱 뜨겁다.

 

문다영 기자 dayoungmoo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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