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에 길을 묻다] 매일 누군가의 악의와 선의를 마주하며 
[책에 길을 묻다] 매일 누군가의 악의와 선의를 마주하며 
  • 문다영 기자
  • 승인 2019.03.28 11: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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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뷰어스=문다영 기자]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함께 학교를 다닌 친구가 있다. 그 친구에겐 치명적 상처가 있다.

친구는 사교성이 좋고 활발해 늘 오락부장을 도맡았다. 학기 초 친구들의 사랑을 도맡았던 그이지만 학기말이 되면 꼭 반 친구들에 둘러싸여 한마디씩 듣게 됐다. 친구들은 학기말만 되면 그를 둘러싸고 그에 대해 안 좋은 점들을 하나씩 꺼냈다. 무엇보다 그 친구와 가장 친하게 지냈던 아이들이 돌변해 친구에게 비수를 꽂았다.

이상하게도 그 현상은 고등학생이 될 때까지 이어졌다. 신체적 폭력은 없었지만 언어폭력은 그 이상으로 친구를 할퀴었다. 한번은 나서서 학우들에게 묻기도 했다. 대체 왜 그러느냐고. 그러자 한 아이가 말했다. “그냥 싫어. 그냥 싫어졌다고” 

그 친구에 대한 대체적 분위기가 그랬다. 사교성이 좋은 면이 싫었을 수도, 그 친구 특유의 자유분방함이 싫었을 수도 있다. 어쨌든 그 친구는 매년 의식 아닌 의식을 치러야 했다. 요즘 그 친구를 만나도 간혹 그 시절 이야기가 나온다. 그 상처는 여전히 지워지지 않았다. 

살다 보면 딱히 규정할 수 없는 악의에 휘둘릴 때가 있다. 학교는 물론이고, 직장 선후배, 하다못해 결혼으로 맺어진 가족에게서도 원인을 알 수 없는 악의를 느끼는 순간들이 있다. 그리고 때로 이런 악의는 구구절절한 사연으로 시작된 앙심보다 더 어둡고 치명적일 때가 많다. 그 악의를 피할 수 있는 방법은 상대가 악의를 거둬주길 바라는 일 뿐이다.

일본의 베스트셀러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악의’는 이런 인간의 이중적 면모, 스스로도 판단하기 힘든 내면에 집중한 작품이다. 중년의 유명작가 히다카는 자택에서 살해된 채 발견된다. 그를 죽인 인물은 누굴까. 용의선상에 있는 인물은 모두 죽은 히다카에 악의를 품고 있다. 히다카가 마당을 더럽힌다는 이유로 자책 없이 죽여버린 고양이의 주인, 히다카가 소설에서 악인으로 그린 실존 인물의 여동생, 그리고 그의 오랜 친구인 노노구치 오사무. 

(사진=현대문학)
(사진=현대문학)

‘악의’에서는 빠르게 노노구치 오사무가 범인이라는 사실을 밝혀낸다. 출판사의 책소개에도 범인을 지목하는 설명글을 볼 수 있을 정도. 그렇다. 이 작품의 클라이맥스는 예의 김전일(추리만화 캐릭터)처럼 범인을 지목하는 순간이 아니다. 작가는 노노구치 오사무가 히다카를 죽인 범인이라는 사실을 시원하게 알린 뒤 ‘죽인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 파헤쳐나간다. 피해자와 가해자가 뒤바뀌고 진실과 거짓이 엇갈린다. 그 과정은 치밀하고 놀랍고 궁금한 이야기들의 연속이라 좀처럼 책장에서 손을 뗄 수가 없다. 작가는 처음부터 끝까지 독자의 예상을 수시로 뒤엎으며 농락에 가까운 희열을 선사한다. ‘나 추리 소설 좀 읽었어’ 싶은 이들이라도 히가시노 게이고가 이끄는 복잡다난한 인간의 속마음으로 들어가다 뒤통수를 맞게 된다. 그리고 그 뒤통수의 여운은 길게 남는다. 

특히 ‘악의’는 사건을 해결하려는 형사의 객관적 수기와 진심을 감추려는 범인의 주관적 수기를 교차시키는 방법으로 좀 더 내밀하게 인간의 내면을 파고든다. 이는 히가시노 게이고 특유의 집착을 더욱 강하게 만드는 장치이기도 하다. 보통의 추리소설이 사건 자체에 중심을 맞추고 이를 해결, 즉 범인을 잡는 과정에 중점을 둔다면 히가시노 게이고는 사건의 ‘원인’과 ‘동기’에 가장 큰 공을 들인다. 이는 때로 지극히 인간적인 범인을 탄생시키기도 하고, 고개를 주억거리게 되는 동기로 설명된다. 그리고 이같은 작가의 관점은 독자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최적의 요인이 된다. 작품 자체의 재미와 더불어 독자는 작품 속 누군가에게 공감하게 되고, 캐릭터의 행동 뒤 감춰진 속내에 짧게나마 사색할 수 있는 여운을 얻게 되는 것이다. 

또 하나, 작가는 전혀 다른 위치에 선 두 사람의 ‘기록’ 형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면서 독자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증언과 기록의 함정에 빠지지 않을 수 있는지, 그 안에 숨겨진 진실을 가려낼 수 있는지. 작품 중심에 서 있는 가가 형사 또한 증언과 기록을 면밀히 살폈기에 노노구치란 범인을 잡는 데 성공했지만 그가 범행을 저지른 원인을 파헤치는 데는 오히려 증언과 기록이 가장 큰 장애물이 됐다. 

아무것도 믿을 수 없고, 믿어선 안되는 작품. ‘악의’는 히가시노 게이고 특유의 반전의 미학이 가장 잘 살아난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더불어 그가 던지는 질문은 누구에게나 내리꽂힌다. 눈으로 본 것, 귀로 들은 것을 믿을 수 있는가. 인간의 본성과 행동은 같을 수 있는가. 사람의 마음을 믿을 수 있는가. 친했던 친구의 얼굴이 적이 되는 경험을 매년 반복해야 했던 나의 옛 친구처럼, 누구나 매일 누군가의 악의와 선의를 마주하며 살아간다. 밝고 어두우며 감동적이다가도 소름끼친다. 어떤 인간의 본성은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문다영 기자 dayoungmoo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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