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에 길을 묻다] 늙어가는 당신에게 닥칠 수 있는 미래
[책에 길을 묻다] 늙어가는 당신에게 닥칠 수 있는 미래
  • 문다영 기자
  • 승인 2019.03.22 13: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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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뷰어스=문다영 기자] “늙으면 죽어야지”

친·외할머니를 비롯해 나이 지긋하신 분들게 가장 자주 듣는 말 중 하나다. 왜 저런 말을 굳이 하나 싶은 생각이 들 때가 많은데 심리학자들은 이를 이중구속(이중 메시지)으로 본다. 입 밖으로 나온 말과 속 안의 진심이 다르다는 것. “늙으면 죽어야지”라고 했을 때 “왜 그런 말씀을 하세요. 오래 사셔야죠”라는 말을 해주길 바란다는 것이다. 특히 이 이중구속이란 자신의 감정을 이해받지 못할까봐 불안을 상대방에게 숨기기 위한 화법이라는 것이 심리학자들의 분석이다. 

그런데 요즘 이 말이 비단 노인들의 입에서만 나오는 것 같지는 않다. 젊은이들에게서 튀어나오는 경우가 적지 않다. 온라인, 오프라인 가릴 것 없이 청년들의 혐로(嫌老) 현상은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청년 세대들은 ‘틀딱충(틀니딱딱+벌레)’·‘할매미(할머니+매미)’·‘연금충(국민연금으로 연명하는 벌레)’ 등 노인을 비하하는 단어들로 노인을 조롱한다. 

그들의 혐오는 어디에서 시작된 걸까. 전문가들에 따르면 급속하게 진행되는 고령화, 노인 부양의 부담을 떠안게 된다는 젊은 세대들의 거부감에서 기인한다. 여기에 더해 오랜 세월 이어져 온 효도·경로사상 강요, 장소를 가리지 않는 일부 노인들의 과격한 행동이 촉매제가 됐다는 것이다. 만약 이런 혐오의 감정이 점점 악화된다면 앞으로의 사회는 어떻게 될까.

아주 파격적으로 악화일로의 노인 혐오 사회를 그린 작품이 있다. 무척 비현실적임에도 결코 얼토당토 않는 비현실이라 치부하기 힘든 박형서 작가의 ‘당신의 노후’다. 

(사진=현대문학)
(사진=현대문학)

 

굉장히 거친 상상력으로 고령화 사회의 미래를 그린 이 작품은 사회의 생존과 인간의 인권이 명백히 대립하는 모습을 그린다. 소설 초반 등장하는 인물들은 다소 미심쩍긴 하지만 ‘노인이라서’ 가능한 죽음을 맞는다. 상습적인 쓰레기 불법 투기, 유년 시절 담배를 훔친 기억, 두 어번 고의성 없는 세금 체납 정도의 죄를 지으며 살았던 77세 노인은 침대와 벽 사이에 끼어 숨진 채 발견된다. 그런가 하면 공무원으로 일하다 퇴직, 모범적인 생활을 이어가던 노인은 아파트 화단에서 숨진 채 발견된다. 돌연사가 충분히 가능한 나이. 그러나 이는 모두 공무원들의 소행. 국가의 지침이다. 소설 속에는 연금을 지급해야 하는 노인들을 죽이는 국민연금공단의 노령연금 TF팀이 존재한다. 

주인공인 장길도라는 70세 노인 역시 이 TF팀에서 적색리스트를 처리하는 일을 해오다 정년퇴직한 인물이다. 그러나 아홉 살 연상 아내가 노령연금 100% 수급자가 되면서 장길도의 평온한 인생이 뒤틀린다. 평생 냈던 금액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을 수급해가는 노인들을 분류한 적색리스트에 아내가 포함된 것이다. 이들은 왜 죽어야만 하는가. ‘국가와 젊은이들에게 해악을 끼친다’ ‘늙은이란 등골을 빼먹는 존재’라는 것이 이 살인의 명분인 셈이다. 누구보다 조직과 국가에 충성하며 평생을 살아온 장길도는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를 앗아가려는 국가와 마주하고야 이 시스템의 잔인함에 몸서리친다. 그는 아내를 구하기 위해 국가와의 싸움을 시작한다.

‘당신의 노후’는 가벼운 길이의 중편인데다 빠른 전개로 술술 읽히지만 그 무게만큼은 10권짜리 대하소설보다 묵직하다. 누군가의 부모이자 소중한 존재였을 이들이 노인이 됐다는 이유만으로 ‘노인의 쓸모’라는 잣대를 들이대는 사회도 끔찍하다. 그러나 노령인구가 전체 인구의 40%를 차지하는 소설 속의 미래에서 이같은 생각은 당연한 것으로 비춰진다. 노인들이 태반인 사회에서 국가와 가계 경제를 짊어지고 살아가야 하는 젊은이들에겐 자신들의 미래를 떠올릴 겨를이 없다. ‘누구나 늙는다’는 이 단순하고 절대적인 명제가 경제적 효율 안에서 철저히 외면당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비인간적 행태의 중심은 다름 아닌 국가다. 공공기관이 노인들을 죽여 없앤다는 섬뜩한 스토리는 작가의 상상력으로 빚어낸 것이지만 결코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로는 보이지 않는다. 이런 설정 탓에 독자들 사이에서 작가가 노후에 연금을 받지 못할 것이란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였다. 이 작품의 무게이기도 하다. 젊음은 결코 영원하지 않다. 누구나 언젠가는 늙는다. 하지만 젊은이들이 무조건 노인을 부양해야만 하는 의무가 있을까. 만약 노인을 위해 젊은이들이 삶의 희망을 잃게 되는 상황이 생긴다면? 현대사회는 그 기로에 서 있다.

문다영 기자 dayoungmoo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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