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다영의 세태공감] ‘황후’와 ‘극한직업’ 사이, 미디어의 품격
[문다영의 세태공감] ‘황후’와 ‘극한직업’ 사이, 미디어의 품격
  • 문다영 기자
  • 승인 2019.02.26 16: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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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영화 '극한직업' 드라마 '황후의 품격' 포스터)
(사진=영화 '극한직업' 드라마 '황후의 품격' 포스터)

 

[뷰어스=문다영 기자] 2월, 안방극장과 스크린에서 극과 극으로 내달린 두 작품이 있다. 막장의 막장까지 치달으며 결국 비난 속에 막을 내린 SBS ‘황후의 품격’과 1500만 관객을 넘어서며 잔인한 장면 없이도 흥행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낸 ‘극한직업’이다. 두 작품에 대한 평가는 미디어의 현실과 착각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우선 ‘황후의 품격’은 ‘막장을 보는 맛’을 살리며 상승곡선을 타다가 수위조절에 실패, 최악이라는 비난을 받으며 막을 내렸다. 작품 안팎의 논란은 차치하고라도 결말을 향해 가면서 자극을 위한 자극적 장면들만 포진하면서 비난에 직면했다. 매회 피가 흐르다시피 했던 ‘황후의 품격’은 유종의 미는커녕 애청자들마저 등돌리게 만든 작품으로 기록됐다. 드라마가 전개되는 가운데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법적 제재에 나서기도 했고, 문화평론가들이 앞다퉈 “폭력 조장”, “자극적 소재를 상업적 전략으로 악용한 케이스”라는 등 혹평을 쏟아냈다. 

(사진=SBS 방송화면)
(사진=SBS 방송화면)

시청률 추이도 명확하다. 첫회부터 분명한 막장 코드를 내세운 이 드라마는 오히려 막장이 아닌 척 비윤리적 장면을 내보내는 여타 작품들과 비교되면서 시청자들의 호응을 얻었다. 요즘 10%대를 넘기 힘들다는 지상파 중 17.9%(이하 닐슨코리아 전국가구 기준)까지 기록하며 승승장구했다. 주말드라마 혹은 케이블 채널에서나 볼 법한 주제의 드라마를 평일 프라임 시간대에 편성한 방송사의 전략이 통하는 듯했다. 그러나 ‘황후의 품격’은 임산부 성폭행 묘사, 데이트 폭력 등 폭력적 장면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시청률 하락을 면치 못했다. 마지막회 시청률이 16.5%로 직전 회차가 13%대까지 떨어진 것과 비교하면 불행 중 다행이지만 시청률 반등에는 다른 이유가 있었다. 마지막회를 챙겨봤다는 시청자들 대다수는 “지금까지 본 게 아까워서 봤다” “의리로 봤다”는 의견들을 쏟아냈다. ‘황후의 품격’ 막장 코드가 끝까지 통하지 못했음을 방증하는 대목이다. 

‘극한직업’의 경우는 정반대다. 최근 잔인함의 극치를 보여주겠다는 듯 작정하고 피가 튀기던 영화들과 궤를 달리하는 작품이다. 물론 ‘극한직업’에도 폭력적 장면이 다수 존재하지만 ‘적절한 수위’라는 평을 받는다. 굳이 넣지 않아도 될 묘사나 표현을 자제했다는 것이다. 영화적 긴장감을 위해 자극적인 장면을 활용하는 이들이 많은 가운데 이병헌 감독은 장면적 충격이 아닌 대사에서의 완급조절과 캐릭터의 매력을 살리는 데 힘썼다. 장르적 이점도 있었겠지만 ‘극한직업’은 다양한 연령층이 보기에 ‘크게’ 불편하지 않은 시각적 안정 속에서 더 큰 성적을 거둘 수 있었다. 영화 개봉 전 영상물등급위원회는 이 작품 속 일부 폭력적 장면을 언급하면서도 “전체적으로 코믹하고 자극적이지 않게 표현한 수준이다”면서 15세 이상 관람가 등급을 매겼다. 실제 영화를 본 관객들 역시 ‘극한직업’의 가장 큰 매력으로 마음 놓고 즐길 수 있는 점을 꼽았다. 무엇보다 10대 자녀들 및 연로한 부모와 함께 재관람했다는 이들이 많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N차 관람은 ‘극한직업’과 마찬가지로 명절 때 개봉해 크게 성공한 ‘범죄도시’이나 ‘베테랑’과 차별화되는 부분이다. 당시 관객들은 작품에는 만족스러워 했지만 다시 보고 싶지는 않다거나 너무 잔혹한 장면이 많았다는 반응을 내놨던 바다. 1500만 신화는 그렇게 쓰여졌다. 전체 스토리의 재미도 재미지만 작품의 전개 속에 도를 넘은 자극적 장면은 없었다. 비단 1500만 관객 돌파 뿐 아니라 굳이 관객을 자극할만한 장면을 넣지 않아도 작품이 인정받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것을 입증한 것이다.

(사진=영화 '극한직업' 스틸컷)
(사진=영화 '극한직업' 스틸컷)

황정민이 주연으로 나선 연극 ‘오이디푸스’에는 오이디푸스가 자신의 눈을 찌르는 장면이 있다. 이 장면을 두고 황정민은 “폭력적이거나 움직임이 크지는 않지만 감성적 인상은 매우 클 것”이라 자신했다. 이는 폭력에 물들어가는 요즘 미디어가 생각해야 할 지점이다. TV고, 영화고 폭력적 장면들이 난무하는 세상이다. 그렇지 않은 작품들도 있지만 필요에 의한 것이 아닌 오직 자극을 위한 자극인 경우가 훨씬 많다는 점은 분명 문제다. 자극적 장면에 대한 논란에 PD나 감독들은 “스토리 전개상 필요했다”고 항변하지만 굳이 없어도 될 장면을 억지로 보여주는 경우가 더 많다. 일부는 시청자나 관객이 더욱 자극적인 장면을 원한다고 하지만 그렇지 않은 작품들의 성공이 이같은 주장의 모순을 지적한다. 더욱이 보는 이들은 작품의 내용을 기억하지, 장면을 기억하지 않는다. 장면을 기억한다면 그건 단발성 화제일 뿐이다. 잠깐 화제를 일으키는 자극의 맛에 취해 숲이 아닌 나무를 보는 건 오히려 제작진이다. 자극적인 장면이 많다고 해서 사랑받는 작품이 된다는 보장도 없다. 작품 흥행의 상관관계도 명확히 구별하기 힘든 상황에서 자극적 장면으로 도배되는 현상은 오히려 미디어가 지양해야 할 길이다. 미디어의 품격을 생각해봐야 할 때다. 

문다영 기자 dayoungmoo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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