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에 길을 묻다] 성선설과 성악설 사이…당신은 어떤 부모입니까
[책에 길을 묻다] 성선설과 성악설 사이…당신은 어떤 부모입니까
  • 문다영 기자
  • 승인 2019.02.28 1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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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케빈에 대하여' 영화 스틸컷)
(사진='케빈에 대하여' 영화 스틸컷)

[뷰어스=문다영 기자] “애 키워보니 어때. 성악설이 맞는 것 같아, 성선설이 맞는 것 같아?”

아이를 둔 사람들과 만나게 되면 자연스레 자식의 이야기로 흐르게 되는 경우가 많다. 아이가 자라면서 하는 기특한 말이라든지, 엉뚱한 말이라든지, 어려운 문제들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고백하고 조언을 구하는 때가 적지 않은데 이 중 꼭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이야기가 바로 ‘성선설과 성악설’이다. 이 질문은 어느 자리에서든 누군가 꼭 던지고 100%의 확률로 의견이 갈린다. 

누군가는 성선설을 주창하면서 절대적으로 환경에 따라 사람의 성격이 변한다고 말한다. 다른 한편에서는 성악설을 논하며 역시 환경과 부모에 따라 착한 사람이 되기도 하고 본래의 성질대로 악하게 살아가는 것이라고 진단한다. 성선설이나 성악설을 철썩같이 믿는 이들 사이에서 인간이란 선과 악 모두 가지고 있지 않은 백지의 상태로 태어난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아이에 따라 다르다는 의견을 내놓는 이들도 더러 있다. 그 중 어느 부류냐고 묻는다면 나는 성선설을 믿는 편이다. 생후 100일 즈음부터 밤수유가 필요없을 정도로 푹 자주던 정말 순하고 맑은 아이였기 때문에 가능한 가설일지 모른다. 그러나 엄마나 아빠가 하는 말들을 모조리 흡수하고 친구의 못된 행동이나 말버릇을 따라하는 것을 보면서 역시 환경이 중요하다 싶은 생각이 드는 것이다. 

이렇듯 갈라진 의견 중 교집합이 있다면 그것은 부모의 영향이다. 성선설, 성악설 혹은 그 중간에 있는 이들은 하나같이 부모의 후천적 영향을 언급한다. 어떤 성격이든 간에 부모가 자식에게 미치는 영향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영화로도 만들어져 적잖은 반향을 일으켰던 라이오넬 슈라이버의 ‘케빈에 대하여’ 역시 바로 이 점을 생각하게 한다. 선과 악이 태생부터 정해져 있는가, 부모의 역할이 중요한가에 대해 고심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엄마에겐 당연한 것으로 요구되는 모성애의 실체와 부모의 존재가 어떤 아이를 만들어내는지에 꼬집는 그 시선은 문장마다 서걱서걱, 칼날처럼 예리하고 아프다.

(사진=알에이치코리아)
(사진=알에이치코리아)

뉴욕의 커리어우먼으로 살아가던 에바는 지극히 평범한 남자 프랭클린과 결혼하고 곧 아이를 임신한다. ‘내가 정말 이 아이를 원했는가?’라는 의문을 갖게 된 에바의 마음에는 애증과 분노가 자리잡기 시작하고 세상에 나온 아들 케빈은 자라면서 유독 그녀에게만 적대적이고 공격적인 행동을 일삼는다. 그렇게 세상의 보편적 모자 관계와 다른 관계를 형성한 에바는 뒤늦게 낳은 딸 셀리아에게는 왜인지 모를 무한한 애정을 퍼붓는다. 딸을 향한 에바의 애정에 비례해 케빈의 분노 역시 커진다. 케빈의 행동을 점점 제어하기 힘들어진 에바는 신경질과 불안증에 시달리고, 이를 참지 못한 남편은 그녀에게 이혼을 제의한다. 그러나 얼마 후, 에바의 아들은 끔찍한 대학살을 저지른다.

케빈은 유아기를 벗어나자마자 엄마를 적대적으로 대한다. 특히 영리한 머리를 엄마를 괴롭히는 데 적극 활용할 정도다. 케빈은 사이코패스로 보인다. 그러나 ‘엄마가 나쁜 아이를 사랑할 수 있겠는가’로 단정지을 수만은 없다. 애초에 엄마가 되기 싫어했던 에바는 아이의 울음소리보다 공사장 소음이 편하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해서 이 가족에 닥친 비극이 케빈에 대한 엄마의 사랑이 부족했고 제대로 교육하지 못했기 때문이라 말할 수도 없다. 이 두 사람 중 한 사람에게 비극의 책임을 전가하기 힘든 것은 다음의 대화만으로도 극명히 드러난다.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어. (중략) 하지만 엄마가 되는 건 생각보다 힘들었어.’ 내가 설명하기 시작했지. ‘난 공항에, 바다 풍경에, 박물관에 익숙한 사람이었어. 그런데 갑자기 레고로 가득 찬 똑같은 방에 갇혀버린 거야.’ 
‘하지만 난 노력했어.’ 케빈이 갈고리로 끌어올려진 것 같은 생기 없는 미소를 지으며 말하더군. ‘당신을 즐겁게 해주려고 말이야’” 

굳이 결론을 내자면 어쩌면 두 사람은 그저 맞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이 책은 가족의 비극을 통해 더욱 더 많은 생각을 하도록 만든다. 내 자신에 대해서, 우리 가족에 대해서. 세상을 활보하던 여자가 엄마라는 이름에 사로잡힌 이후의 삶, 부모의 선택으로 태어나게 된 아이가 당연히 받아야 하는 사랑을 받지 못하는 하루하루는 양쪽 모두에게 고통일 수밖에 없다. 

성선설과 성악설. 선천적과 후천적. 이같은 양분론은 논의할 가치가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케빈에 대하여’는 이 궁금증에 대해 세상에서 가장 복잡한 수식을 펼쳐 보여준다. 여기에는 해답이 없다. 분명한 것은 인생의 선택과 그 선택에 맞는 노력이 현재의 결과를 도출한다는 것이다. 라이오넬 슈라이버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

문다영 기자 dayoungmoo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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