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주보기] 지성이 보여주는 ‘미친 연기’의 출발점
[마주보기] 지성이 보여주는 ‘미친 연기’의 출발점
  • 이소희 기자
  • 승인 2018.09.26 13: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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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제공)
(사진=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제공)

[뷰어스=이소희 기자] “새로운 역할에 도전을 한다는 생각은 없어요. 내게 있어 연기의 도달점은 어떤 캐릭터를 만드는 게 아니라, 있는 캐릭터에 감정을 쌓고 쌓아서 그 인물의 에너지를 흡수하는 데 있어요”

배우 지성에게 ‘미친 연기’라는 수식어가 종종 따라 붙는다. 그 이유는 있었다. 지성은 극중 인물을 두고 ‘이건 센 캐릭터’ ‘이건 사랑스러운 캐릭터’와 같이 정해놓고 그 길을 따라가려 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아예 처음부터 캐릭터를 만들어나가겠다는 생각을 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이미 성격이 형성된 인물에 자신의 숨결을 불어 넣어 ‘너는 나 나는 나’와 같은 상태에 이르게 한다. 덕분에 그의 연기는 ‘메소드’가 된다.

영화 ‘명당’에서도 이런 지성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지성은 몰락한 왕족 흥선을 연기한다. 나라를 옳은 길로 이끌려는 천재지관 박재상(조승우)과 함께 악한 장동 김씨 가문을 몰아내고자 한다. 하지만 두 명의 왕이 나올 명당의 존재를 알게 되고, 흥선은 다른 뜻을 품게 된다. 극중 지성은 땅에 떨어진 음식을 핥아먹는 강렬한 첫 등장부터 복잡미묘한 울분이 폭발하는 클라이맥스 신까지, 한시도 눈을 뗄 수 없는 연기로 스크린을 채운다.

“흥선은 실존인물인 만큼 더 깊이 파고들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어요. 젊은 흥선의 모습이 담긴 자료가 많이 남아있는 것도 아니라서 어차피 참고할 만 한 내용도 별로 없었죠. 초점을 맞췄던 건 ‘상가집 개’로 살며 목숨을 부지한 인물의 배경이에요. 연기하는 사람 측면에서는 이런 전사를 두고 ‘살려고 이렇게 했다고? 그럼 언제라도 죽을 수 있는 삶을 살아온 거네?’와 같은 생각을 하게 되거든요. ‘내가 흥선이라면 어떤 마음으로 삶을 살아왔을까’하는 가정환경에 대해 깊은 고민들을 했어요”

(사진=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제공)
(사진=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제공)

지성은 흥선을 이해하기까지 거쳐 온 과정을 상세하게, 또 진지하게 설명했다. 이미 정해진 인물을 따르되 그 삶을 이해하려고 노력한 흔적이 역력했다. ‘미친 연기’는 배우가 직접 인물을 만들어나갔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고 추측했던 오해를 한 번에 풀어준 지성이었다. 

“흥선은 일단 살고 보는 게 가장 큰 목적이었을 거예요. 그런데 어느 타이밍에 내 뜻을 이룰 수 있게 됐고, 그 순간 절박함이 튀어나온 거죠. 주변 사람들이 한 명씩 죽어가는 상황도 이를 부추겼을 테고요. 그래서 흥선의 모습이 미치광이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인물의 입장에서는 그간의 많은 감정이 내포된 울분이 한꺼번에 터진 거라고 봐요. 소리를 지를 때도 그냥 목소리를 내는 게 아니라 나를 내려놓고 정말 흥선으로서 우러나오는 울분을 표현해야했죠. 그걸 이해하고 연기하기까지 힘들었어요”

‘명당’은 흥선의 일대기를 그린 작품이 아니다. 명당을 둘러싼 인간의 이기심과 욕망을 조명하는 내용이다. 그렇기 때문에 박재상과 뜻을 달리하게 되는 흥선은 메시지를 품고 있는 핵심역할이면서 결코 혼자 튀어서는 안 되는 어려운 위치에 있다. 지성 역시 이를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흥선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배경이 구체적으로 제시되지 않더라도 비언어적인 연기로서 흥선의 감정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도록 노력했다. 

“흥선이 말을 타고 가는 장면들에 의미를 많이 두고 있어요. 그는 생각을 밖으로 드러내는 인물이 아니거든요. 대신 혼자 말을 타고 가면서는 솔직한 감정을 드러내요. 위기에 빠진 초선(문채원)에게 달려갈 때, 초선의 죽음을 보고 또 다른 마음을 결심한 뒤 달려갈 때, 그 결심을 이루기 위해 명당으로 달려갈 때, 모두 다른 감정이 담겨 있어요. 내 눈에 대한 연기에 좀 더 집중해서 봐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사진=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제공)
(사진=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제공)

지성은 내면적인 부분 외에도 캐릭터의 외형으로도 완벽한 연기를 보여주려 애썼다. 횃불을 한 손으로 던져야 하는 신에서는 의외로 소품이 무거워 촬영 전 던지는 연습부터 했다. 또 우렁차게 긴 호흡으로 발성을 내뱉어야 하는 신을 위해서는 가수들이 사용하는 녹음실을 빌려 목이 쉬도록 소리를 내질렀다. 그렇게 끝까지 해봐야 감정을 어떻게, 어느 정도 쏟아내야 할지 결정되기 때문이란다.

이렇게 외적으로, 내적으로 완벽한 몰입을 보여준 ‘명당’ 속 지성을 보고난 뒤 더욱 커진 궁금증이 있었다. 이렇게 혼을 다 빼놓을 정도로 역할에 빠져들면 감정을 주체하지 못 하는 상황도 생기지 않을까. 주변과의 밸런스나 내가 연기를 하고 있다는 인식이 흐트러지지는 않을까. 지성 또한 이에 대한 고민을 끊임없이 하고 있는 상태였다. 지성의 ‘미친 연기’는 감정의 몰입만으로 되는 게 아니었다. 작품, 그리고 나 자신에게 과도한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몸과 마음의 밸런스를 맞추는 데서 시작된 것이었다.

“‘명당’을 찍다가 어떤 시기에는 아내에게 ‘이번 주는 내가 지성이 아닐 거야’라고 말을 했어요. 연기에 모든 것을 다 쏟아 붓고 나니 빠져나오고 나서는 기운이 안 차려지는 거죠. 나이가 더 들면 노련미가 생겨서 감정을 끌어내는 것도 좀 더 수월해지지 않을까 싶어요. 감정을 혹사시키지 않고도 몰입과 빠져나오는 게 잘 되는 수준이겠죠. 최근에도 감정의 끝까지 가는 역할들을 주로 했는데, 감정대신 몸을 혹사시킨 부분들이 있어요. 드라마 ‘피고인’ 때도 난동부리는 장면에서 미리 제작진에 방탄유리를 준비해달라는 등 요청을 미리 드리고, 연기할 때는 막 다 깨고 부수면서 과격하게 감정을 토해냈거든요. 아마 감정에만 완전히 몰입했다면 정말 정신병에 걸렸을 거예요. 또 내 연기나 작품에 방해가 될 수도 있다는 걸 생각하지 않을 수도 없고요. 이런 밸런스를 맞춰가는 게 앞으로 나에게 주어진 과제인 것 같아요. 나 혼자만 연기를 하는 게 아니라 모두가 앙상블을 이루는 게 작품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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