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필] '언덕길의 아폴론' 재즈가 주는 현재진행형 환희
[씨네;필] '언덕길의 아폴론' 재즈가 주는 현재진행형 환희
  • 김동민 기자
  • 승인 2018.08.31 13: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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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언덕길의 아폴론' 스틸컷 (사진=디스테이션)
영화 '언덕길의 아폴론' 스틸컷 (사진=디스테이션)

[뷰어스=김동민 기자] 재즈야말로 자유의 음악이다. 록 마니아가 들으면 화를 낼 지도 모를 소리지만 재즈 앙상블을 접한 사람들은 안다. 피아노와 드럼, 콘트라베이스가 더해진 단촐한 트리오의 조합이 그야말로 무한한 음악적 세계를 창조해 낸다. 유명 재즈 스탠다드 넘버들은 각각 기본 멜로디와 코드의 틀만 유지한 채 끊임없이 새로운 리듬과 즉흥 솔로 연주로 재탄생한다. 바꿔 말하자면 하나의 재즈 곡은 공연될 때마다 매번 또 다른 유일무이한 작품이 되는 셈이다. 그래서 무대에 오른 재즈 연주자들은 늘 자신의 음악에 흠뻑 빠질 수밖에 없다. 어쩌면 공연을 감상하는 관객들보다도 더.

영화 ‘언덕길의 아폴론’은 바로 이러한 재즈가 주는 환희를 1960년대 일본 사세보의 세 고등학생들에게 대입한다. 주인공은 피아노가 취미인 전학생 카오루(치넨 유리)와 학교의 유명한 문제아 센타로(나카가와 타이시), 그리고 레코드가게 딸인 리츠코(고마츠 나나)까지, 세 동급생이다. 카오루가 드러머 센타로를 통해 재즈를 알게 되고 리츠코의 가게 지하에 마련된 연습실에서 함께 연주하며 가까워지는 전개가 영화의 큰 줄기다. 일본 여성작가 코마다 유키의 동명 만화를 원작으로 했다.

영화 '언덕길의 아폴론' 스틸컷 (사진=디스테이션)
영화 '언덕길의 아폴론' 스틸컷 (사진=디스테이션)

‘언덕길의 아폴론’은 그야말로 재즈에 대한 입문서이자 그 자체로 한 편의 음악 다큐멘터리 같다. 아트 블레이키(Art Blakey)의 ‘모아닌(Moanin)’과 ‘섬데이 마이 프린스 윌 컴(Some Day My Prince Will Come)’, ‘마이 페이보릿 씽(My Favorite Things)’ 등 주옥같은 재즈 넘버들의 향연이 줄곧 이어진다는 점에서다. 영화 ‘사운드 오므 뮤직’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 OST로 친근한 해당 곡들은 두 남학생과 한 여학생 사이의 관계처럼 밀고 당기는 합주로 재즈 특유의 희열을 한껏 뿜어낸다. 센타로 역을 맡은 나카가와 타이시와 카오루로 분한 치넨 유리의 실제 연주는 음악을 즐긴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온몸으로 대변한다.

영화 속 주인공들에게 있어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이란 곡명으로 대변되는 재즈 연주는 저 멀리 있는 이상향이 아닌 현재진행형으로서의 꿈으로 기능한다. 흔한 성장영화처럼 대회에 입상하거나 뮤지션으로 성공하는 게 그들의 목표는 아니다. 카오루와 센타로의 첫 만남에서 영화 말미 어른이 된 뒤의 재회까지, 그들은 함께 연주하며 그 순간을 만끽한다. 친척 집에서 눈칫밥을 먹는 카오루와 출생의 상처를 지닌 센타로도 그 시간만큼은 더할 나위 없는 환희를 맛본다. 역시 재즈를 소재로 한 영화 ‘위플래쉬’(2014)와 비교하면 ‘언덕길의 아폴론’이 방점을 찍는 지점은 ‘학문’이 아닌 ‘유희’로서의 재즈다.

영화 '언덕길의 아폴론' 스틸컷 (사진=디스테이션)
영화 '언덕길의 아폴론' 스틸컷 (사진=디스테이션)

다만 재즈 음악으로 ‘대동단결’되는 이들의 서사가 다소 억지스러운 건 못내 눈에 걸린다. 전후 미군이 주둔한 일본의 작은 항구도시란 배경은 다분히 편의적으로만 사용되고, 세 주인공의 어설픈 삼각관계는 개연성이 상당부분 결여돼 있다. 아지트를 제공하는 리츠코의 아빠와 운동권 대학생인 트럼펫 연주자 준이치의 서사 역시 알팍하게만 드러나 사실상 있으나마나다. 만화책으로 9권, 애니메이션 TV 시리즈로 12부작에 달하는 이야기를 펼치기에 120분이란 러닝타임은 턱없이 부족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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