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에 길을 묻다] 유시민이 진짜 하고 싶었던 말
[책에 길을 묻다] 유시민이 진짜 하고 싶었던 말
  • 문다영 기자
  • 승인 2018.08.07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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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JTBC)
(사진=JTBC)

[뷰어스=문다영 기자] 유시민이 정치와 결별을 선언했다. 정치계에서 발을 뗀 것은 이미 오래전이지만 정치 시사 프로그램 패널로 출연하면서 계속 정치적 발언을 해왔던 그다. 그렇게 2년 반 동안 JTBC '썰전'을 이끌었던 그는 지난 6월 29일 “이제는 정치에서 한 걸음 더 멀어져서 글 쓰는 시민으로 살면 좋겠다. 잊히는 영광을 저에게 허락해주시길 바란다”는 말을 남기고 하차했다. 

시청자들의 아쉬움은 독자들의 만족으로 채워진 모양새다. 유시민의 '역사의 역사'는 세계의 역사가들, 그리고 그들의 책을 분석·평가한 책으로 독자들의 유입이 쉽지 않은 소재임에도 불구하고 6주 내내 국내 도서 시장 정상을 차지하고 있다.

유시민의 ‘역사의 역사’는 역시 그답다는 말이 나오게 한다. ‘역사란 무엇인가?’ 이 질문에 혹할 만한 사람도 있겠지만 기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역사를 어려워한다. 책 중에서는 인문서를 어려워하는 이들도 많다. 그렇기에 ‘역사의 역사’ 첫 1위는 사실상 유시민의 이름값이 큰 비중을 차지했다고 보는 것이 맞을 터다. 그러나 그의 책이 6주 연속 도서시장에서 맹위를 떨치는 데에는 유시민의 껍데기가 아닌 내면이 큰 비중을 차지했다고 봐야 한다. 다시 말해 유시민의 달변을 사랑하고 좋아했던 사람들이 이 책을 집어들었다 해도 책의 내용이 너무 어렵다거나 재미가 없었다면 금세 순위가 하락했을 것이다. 하지만 ‘역사의 역사’는 그렇지 않다. 분명 역사 이야기다. 이 책 안에 언급되는 도서를 한 장도 펼쳐보지 않은 이들도 허다할 터다. 그럼에도 이 책은 재밌다는 생각이 들게 하고 책장을 덮고 나면 지식인이 된 만족감을 선사한다. 유시민은 자신의 이름값에 대한 기대를 날카로운 분석과 매력적인 문체로 부응해냈다. 

(사진=돌베개)
(사진=돌베개)

‘역사의 역사’는 헤로도토스와 투키디데스, 사마천, 랑케, 마르크스, 박은식, 신채호, 백남운, 에드워드 H. 카, 슈펭글러, 토인비, 헌팅턴, 유발 하라리 등 다양한 시대에 살았고 살고 있는 다양한 나라의 역사가들을 조명한다. 무엇보다 역사서에 대한 분석과 더불어 역사서가 쓰였을 당시의 상황, 정세 등을 해박하게 비교 설명하면서 독자가 쉽게 역사의 한복판에 진입하도록 돕는다. 여기에 더해 각 시대를 대표하는 역사가들에 대한 촌철살인 평과 사사로운 이야기까지 풍성하게 담겨 있다.

무엇보다 유시민 특유의 재기발랄함이 책 곳곳에 녹아 있다. 그는 그리스 시대 전투에서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 전투를 비교하는가 하면 거세 당한 사마천이 행한 세기의 복수, 학자로선 훌륭했지만 역사가로선 유급생에 가까웠던 랑케에 대한 신랄한 비판까지 ‘썰전’ 혹은 ‘차이나는 클라스’에서의 모습을 떠올리게 만드는 비유와 묘사들로 독자들에게 한 발 더 가까이 다가선다. 진지하게 접근하고 비평하는 동시에 그간 쌓은 예능감이 툭툭 튀어나오는 듯한 느낌이다. 그렇기에 그는 책상머리 토론을 하는 학자의 이미지보다는 로마의 음유시인, 중국 저작거리의 이야기꾼 등으로 독자들에게 이야기를 건넨다. 또 유시민은 책에서 언급된 역사서를 읽은 이들에겐 공감 혹은 이견을 들려주고, 역사서를 읽지 않은 이들에겐 전반적 내용과 함께 해당 시대의 주요 정보들을 전하며 사전 지식을 꼼꼼히 전한다.

다만 어려운 부분도 있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이 책을 읽은 독자들 역시 “재미있게 읽었다”, “유익했다”, “역사서를 읽고 싶어졌다”는 반응을 내놓으면서도 도중 도중 어려웠던 점들에 대해 나열하고 있다. 그럼에도 에세이나 친숙한 캐릭터 위주의 책이 도서시장을 장악했던 상반기 끝자락에 ‘역사의 역사’가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점은 무척 고무적이다. 유시민이란 후광효과가 작용할 수밖에 없었을 터지만 다소 어려운 내용을 담고 있음에도 독자들이 흥미를 갖게 하고, 재미를 느끼게 했다는 점은 유시민이 전직 정치인, 혹은 폴리테이너가 아닌 작가로서도 얼마나 탁월한 능력을 갖고 있는지 알게 하는 대목이다.

(사진=JTBC)
(사진=JTBC)

그렇다면 그는 왜 역사서와 역사가에 대한 책을 썼을까. ‘나의 한국현대사’, ‘유시민과 함께 읽는 문화이야기’시리즈, ‘거꾸로 읽는 세계사’ 등 워낙 역사에 대해 관심이 높았던 그이긴 하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이 책이 나온 건 단순히 고대부터 현대까지 세계를 여행하는 느낌을 전달하기 위함만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그는 고대의 역사를 차례로 훑어오면서 요즘의 사회와 비교하고 나아갈 방향을 제시한다. 랑케를 비판하면서는 “랑케는 역사의 사실에서 인간의 이야기를 끌어내지 못했다(p.141)”고도 한다. 이 말은 비단 랑케만을 꼬집은 말은 아니다. 유시민은 역사가 가치있는 것은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 때문이며,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기에 역사가 비로소 재미있을 수 있다고 역설한다. 

그가 이 책을 집필한 시기는 2016년 겨울. 국정농단 사태와 촛불집회가 한창이던 때였다. 80년대 민주화 운동 후 가장 거세게 민중이 들고 일어난 시점이기도 했다. 그 장면들 속에서 유시민은 ‘역사의 역사’를 집필했다. 어쩌면 그가 이 책을 통해 말하고 싶었던 것도 바로 그런 점일지 모르겠다. 단순히 글로 기록된 역사, 그 시대 권력자들의 입맛에 맞춘 극소수의 역사가 아닌 인간들의 숨결에서 빚어진 진짜 역사를 기억하고 기록하자는 것. 그것은 비단 한 역사가의 의무가 아니라 시대를 사는 이들의 의무라는 것.

‘역사의 역사’는 폴리테이너였던 유시민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긴 책이다. 언뜻언뜻 정치성향이 드러나는 대목들이 있긴 하지만 이 책은 오롯이 유시민의 시선에서 바라본 역사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욕심을 더 내보자면 그가 쓴 삼국시대, 조선의 역사서를 읽을 수 있다면 좋겠다는 것이다. 유시민이 같은 피가 흐른 선조들의 이야기를 풀어낸다면 ‘역사의 역사’보다 훨씬 재미있을 것 같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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