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양은 다르지만 본질은 같은 두 남자의 '부성애'
모양은 다르지만 본질은 같은 두 남자의 '부성애'
  • 문서영 기자
  • 승인 2018.03.16 16: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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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뷰어스=문서영 기자] 아버지는 전형적인 한국남자였다. 좋게 말하면 카리스마 넘치고, 나쁘게 말하면 관심없어 보이는. 무뚝뚝하고 과묵한 집안의 가장은 어머니와 내가 조잘조잘 이런 얘기들을 할 때면 무심한 듯 흘려듣는 남자였다. 나는 다른 자매들에 비해 아버지를 더욱 좋아하고 따르는 딸이었지만 그럼에도 누군가 아버지에 대해 물으면 “전형적인 한국남자”라는 말이 튀어나오곤 한다.

사춘기에는 잘못을 저질러도 별다른 말을 하지 않는 아버지를 보며 내게 무관심한 것이라 생각했다. 딸이 힘겨워하는 일에 있어서도 딸의 편을 들기보다 딸과 반대된 곳에 서 있는 이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에 서운하기도 했다. 딸의 크고 작은 성공과 실패에 늘 일관된 톤을 유지하는 아버지가 원망스러울 때도 있었다.

더욱이 시골 고향에 머무르고 있어 1년에 한두 번 봐야 많이 보는 아버지다. 전화를 하기에도 머쓱하고 어색한 아버지였다. 그러던 어느 날, 미래를 고민하던 시기에 시골에 계신 부모를 뵙고 올라오던 길이었다. 아버지는 “사랑한다”는 문자를 보내왔다. 비록 문자였지만 처음 듣는 말. “항상 너를 믿었고 네가 잘 해온 것에 감사하다. 앞으로도 언제나 나는 네 편이다. 네가 가는 모든 길을 응원한다. 항상 아버지가 곁에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라”

세상 전부를 얻은 느낌이었다. 어머니가 이런 말을 했다면 순간의 감동으로 남았을 것이다. 하지만 난생 처음 아버지의 진심을 알게 됐다는 생각이 눈물을 쏟게 했다. 그렇게 아버지는 늘 그 자리에서 묵묵히 나를 응원해 온 존재였다.

나만이 아닐지 모른다. 부성애(父性愛)는 때론 모성애보다 더 짙고, 더 아련하고, 애틋한 사랑으로 묘사되곤 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묵묵했던 아버지가 진한 애정을 드러낼 때 대중은 더욱 열광한다.

어머니의 존재감과는 또 다르다. 아버지로서의 ‘역할’을 넘어 온 사랑을 바치는 존재로서의 아버지는 그래서 더욱 빛난다. 

(사진='파리의 아파트' 책표지)
(사진='파리의 아파트' 책표지)

한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작가 중 한명인 기욤 뮈소의 신작 ‘파리의 아파트’도 부성애에 집중한다. 그는 아들을 세상 누구보다 사랑했던 천재화가의 비극적 삶과 그의 마지막 희망을 좇아가는 또 다른 남자를 통해 모양은 다르지만 본질은 같은 부성애를 조명한다. 

전직형사 매들린과 극작가 가스파르는 임대회사의 실수로 파리의 한 아파트에서 원치 않는 동거를 하게 된다. 두 사람이 머무르는 집은 천재화가 숀 로렌츠가 살았던 곳. 매들린과 가스파르는 그 집의 법적상속인을 통해 숀 로렌츠 가족의 비극을 알게 된다. 숀 로렌츠가 죽기 직전까지 파헤치려 했던 진실을 담은 마지막 그림을 찾아나서는 두 사람. 숀의 비밀을 파헤쳐 가는 동안 두 사람은 눈앞으로 다가서는 연쇄살인마의 그림자와 대면하게 된다.

기욤 뮈소 특유의 속도감과 스릴러적 면모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재미있다. 기욤 뮈소는 기술적으로나 흡인력으로나 더욱 성장한 느낌을 준다. 천재 화가 숀 로렌츠의 열정적인 사랑에서 비롯된 비극, 매들린과 가스파르가 간직한 아픔은 작품을 끌어가는 힘이 된다. 종반부에 치달을수록 결말이 궁금해 책에서 손을 놓지 못하게 된다. 작품의 완성도 역시 종전의 작품들에 비하면 월등하다.

여기에 더해 가스파르와 숀 로렌츠, 그리고 매들린을 통한 부성애, 모성애의 강조는 기욤 뮈소의 색채를 더욱 다채롭게 한다. 어린 아들을 둔 아버지로서의 기욤 뮈소의 마음이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작위적이고 과하게 극적이다. 매들린과 가스파르의 만남부터 두 사람이 숀 로렌츠의 사건을 맡으며 거치는 과정은 자연스럽기보다 결말을 향한 장치에 가깝다. 더욱이 기욤 뮈소의 힘있는 문장력은 속도감 있게 독자들을 끌고 가지만 결국 뻔한 결말에 당도한다. 가스파르와 매들린의 관계도 그렇다. 둘은 앙숙이면서도 공명하며 사건의 전개에 있어선 흥미로운 관계를 유지한다. 그러나 둘 사이에 허술하게 얽힌 얼개는 결말과 닿았을 때 허무한 기분을 지울 수 없게 한다. 속도감은 기욤뮈소표 스릴러의 트레이드 마크지만 이 때문에 촘촘한 구성과 꽉 채운 만족도는 느낄 수 없다. 장르소설 마니아들에게 어정쩡한 평가를 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기욤 뮈소의 작품은 여전히 재미있다. 주인공들과 함께 움직이는 듯한 문체나 통통 튀는 아이디어와 전개는 재미를 배가시킨다. 한편의 영화를 보듯 진행되는 작품의 매력은 차고 넘친다. 그러나 오히려 영화화를 노린 듯한 이 속도감이 독자에겐 아쉬움을 남긴다. 책은 책만의 매력이 있다. 그의 작품에 등장인물에 대한 보다 섬세한 터치, 구성, 짜임새가 더해진다면 기욤 뮈소는 지금까지의 2% 부족한 헛헛함을 털어내고 꽉찬 재미를 선사할 수 있을 것이다. 기대감과 동시에 아쉬움이 더욱 짙어지는 이유다.

408쪽의 책은 술술 읽힌다. 반전있는 영화같은 책을 읽고 싶다면 주저없이 들어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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