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파괴' 강렬한 죽음의 미학
'자기파괴' 강렬한 죽음의 미학
  • 문서영 기자
  • 승인 2017.12.01 10: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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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영화 '아마도 내일은' 스틸컷)
(사진=영화 '아마도 내일은' 스틸컷)

[뷰어스=문서영 기자] 10대의 나는 감수성이 남달랐다. 액션 영화를 보면서도 주인공의 처절한 심경에 감정 이입이 돼서 펑펑 울었다. 어느 정도였는고 하면 애니메이션을 보면서도 눈물을 줄줄 흘려 피를 나눈 형제에게마저도 놀림을 당하곤 했다.

그런 나의 고교 시절 화두는 자살이었다. 조금만 괴로운 순간이 와도 자살을 떠올렸다. 심지어 자살이 멋져 보였다. 드라마틱하고 극적인 이야기를 좋아하고 소설에 푹 빠져 살던 내게 자살이라는 죽음이 아니라 판타지처럼 다가왔던 것 같다. 사실 자살을 하고 싶을 이유가 없었다. 어찌됐든 세상의 기준에서 잘 해내고 있는 아이였으니까. 또 당시엔 힘들었지만 지금 곰곰이 곱씹어보면 굳이 그럴 이유가 없을 일들이었다. 유독 예민했던 감수성이 영향을 미쳤을 지는 확신할 수 없다. 하지만 성인이 된 후 주변 사람들이 날 걱정할 정도로 커다란 개인사를 겪으면서도 ‘죽고 싶다’는 생각은 “접어두자”였으니 한때 남달랐던 감수성 때문일 수도, 10대의 원인 모를 치기일 수도 있겠다 싶다.

만약 그때 누군가 내 등을 조금만 밀었더라면 어떻게 됐을까. 나의 도덕심과 두려움을 떨쳐내고 죽음을 부추길만한 사람이 있었다면? 아아, 그건 조금 무서운 일이다.

(사진='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책표지)
(사진='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책표지)

현실엔 없고 김영하의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에는 있는 것. 바로 자살 조력자다. 그는 실체인 인물인 듯, 자살자들의 환상인 듯 존재한다. 그는 자신의 손에 피를 묻히지는 않는다. 다만 조금이라도 기미가 있는 이들을 귀신같이 알아보고 그들이 ‘안식’을 찾도록 유도한다. 그 행위는 그에게 있어 예술이며 그러한 사람들은 그에게 고객이 된다. 그렇다면 그는 무엇을 얻는가? 여행지에서 만난 한 여자의 질문에 그는 자신이 “지옥에 있다”고 답한다. 그리고 자신의 고객들 이야기를 담은 소설을 쓴다.

자살 조력자가 고객을 소재로 소설 속에 또 다른 소설을 쓰는 이중구조는 독자의 몰입도를 높인다. 그의 소설 속에 등장하는 유디트와 미미, C는 이 세상에서 끝도 모를 불안과 권태를 느끼며 휴식을 갈구한다. K는 빼앗기는 인생만 살다 이룰 수 없는 꿈에 모든 걸 체념한 상태다. 세상 어디에도 그들의 마음이 쉴 수 있는 안식처는 없다. 그저 그 불안한 마음을 외면하고 도망치며 살아왔을 뿐.

타인의 자살을 유도하고 죽음의 순간을 바라보는 그와 네 사람의 이야기는 고작 134쪽에 담겨 있지만 그 강렬함을 두께와 비교할 수는 없다. 김영하는 29살에 쓴 자신의 첫 장편소설인‘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를 통해 퇴폐적이면서도 우아하게 네 인물의 이야기를 끌고 나간다. 그 안에 스스로 생을 끝내는 죄를 묻는 윤리나 “죽지 말라”는 설득은 없다. 오히려 그렇기에 독자가 생각할 수 있는 여지를 남긴다. 134쪽 사이에 혹은 이후에 있어야 할 페이지들은 독자 몫이라는 듯.

(사진=영화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스틸컷)
(사진=영화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스틸컷)

무엇보다 표지를 넘기면 가장 처음 보게 되는 장 자크 다비드의 ‘장 폴 마라의 죽음’이나 구스타프 클림트의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자르는 유디트’ 들라크루아의 ‘사르다나팔의 죽음’ 등 그림들은 강렬한 이미지와 함께 작품과 맞물려 폭발적인 시너지를 낸다. 명화로 강렬한 인상을 안긴 김영하는 이후엔 자신의 힘으로 2차 충격을 선사한다. 거칠 것 없는 에너지와 역시나 시니컬하고 심드렁하기까지 한 문체들. 그림을 매개로 한 소설이라기보다는 자극적이고 강렬한 원색의 색채를 마음껏 휘두른 한 폭의 그림 같다는 인상을 남긴다. 이야기에 힘을 보태는 명화와 더불어 제목마저도 소설가 프랑수와즈 사강이 마약 복용 혐의로 기소됐을 때 법정에서 남긴 말을 그대로 가져왔지만 김영하는 마치 그 예술가들의 영혼을 집어삼킨 듯 자신의 것으로 체화한다.

다만 그가 그리는 죽음의 미학은 철저히 환상이다. 현실에서의 죽음은 그렇게 섣불리 단정 지을 수도, 쉬울 수도 없다. 어떤 이들에겐 쉽게 죽는 것마저 호사인 경우도 있다. 1996년, 세기말적 분위기를 감안하고라도 현실과 동떨어진 환상소설에 가깝다. 대담하고 실험적인 면에 감탄하면서도 뒷맛은 씁쓸하다.

책은 가방에 쏙 들어가는 판형이며 앞서 말했듯 무척 얇다. 정말 장편소설인가 싶은 생각이 들게 하는 두께인 만큼 금방 읽힌다. 요즈음 김영하의 것보다 템포가 빠르고 거칠 것 없는 문체들은 속도감을 높인다. 이야기의 강렬한 인상을 고스란히 느끼고 싶다면 끊어 읽기보다 단번에 읽기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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